[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247> 국립축산과학원 형질전환 동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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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8면

구제역 때문에 한 달 넘게 집에 못 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경기 수원시 오목천동의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 직원들입니다. 외부와 접촉하다 구제역 바이러스를 들여올까 걱정돼 지난달 3일부터 140여 명의 전 직원이 출퇴근 금지 명령을 받은 겁니다. 이들이 연금생활까지 하면서 지키고자 하는 가축들은 우리나라 생명공학 연구의 결정체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형질전환 동물입니다. 치료제나 이식용 장기를 생산하기 위해 유전자를 변형한 동물들입니다. 국립축산과학원에서 키우는 형질전환 동물이 어떤 것들인지,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임미진 기자

이식용 장기 생산하기에 가장 좋아 ‘간택’

앞으로 살펴볼 형질전환 가축은 대부분 돼지입니다. 가축들을 소개하기 전에 왜 주로 돼지가 연구 대상이 되는지를 설명해야겠죠. 돼지는 장기의 크기와 구조가 인간과 비슷한 동물입니다. 이 때문에 인간에게 이식할 장기를 생산하기에 가장 좋은 동물로 꼽힙니다. 어미돼지 한 마리가 한 해 새끼를 스무 마리나 낳는 것도 돼지의 인기 비결입니다. 임신 기간도 짧습니다. 270~290일 정도 되는 소와 달리 돼지는 114일에 불과합니다. 어미와 같은 형질을 지닌 돼지가 그만큼 많이, 자주 태어나니 치료제와 장기를 대량으로 공급할 수 있겠지요.

장기 이식용 돼지들은 이름 끝에 ‘미니 돼지’라는 설명이 많이 붙습니다. 보통 돼지는 다 자라면 300㎏에 육박하지만, 이들 미니 돼지는 80㎏ 정도까지만 자랍니다. 남자 어른과 비슷한 체중이 되는 거지요. 자연히 장기의 크기도 사람과 비슷해 이식용으로 적합하답니다.

경기 수원시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에서 자라는 형질전환 복제 미니돼지 ‘믿음이’. 장기 이식 때 생기는 면역 거부 반응을 제어하게끔 유전자가 전환됐다. [국립축산과학원 제공]



국내 최초의 형질전환 복제돼지 ‘지노’

2009년 4월 태어난 지노(Xeno)는 국내 최초의 ‘바이오 장기용 형질전환 복제 미니 돼지’입니다. 지노의 특성을 이해하려면 ‘면역 거부반응’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동물의 장기를 인간에게 이식하면 원래는 면역 거부반응이 나타납니다. 인체와 맞는 물질이 아니라고 여겨 면역 체계가 동물의 장기를 공격하는 현상이지요. 이때 가장 먼저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항원이 ‘초급성 항원’이고 차례로 급성·세포성·만성 항원이 거부반응을 일으키게 됩니다.

지노는 면역 거부반응의 첫 단계인 초급성 항원을 만들어내는 ‘알파갈(Gal-T)’ 유전자를 제어한 돼지입니다. 돼지 세포에서 이 유전자를 파괴한 뒤 복제한 것이죠. 따라서 지노의 장기를 사람에게 이식해도 초급성 면역 거부반응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지노는 2006년부터 3년간의 연구로 태어났습니다. 34억원의 연구비가 들었습니다. 이후 인공수정을 통해 지노의 새끼들도 20여 마리가 태어났지요. 지노의 새끼들은 대부분 지노처럼 알파갈 유전자가 제어된 상태로 태어납니다. 국립축산과학원 측은 2013년께면 바이오 장기용 돼지가 매년 30여 마리 태어나 장기 이식 연구를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노’보다 강한 ‘믿음이’… 면역거부반응 이중 제어

지난해 8월 태어난 믿음이는 지노보다 한층 더 강한 복제 돼지입니다. 믿음이는 ‘바이오 장기용 다중 형질전환 복제 미니 돼지’라고 불리지요. 지노와 비슷한 이름이지만 ‘다중’이라는 단어가 추가됐습니다. 바로 면역 거부반응을 이중으로 제어했기 때문입니다.

지노가 앞서 설명한 대로 초급성 면역 거부반응 유전자(Gal-T)만 제어했다면, 믿음이는 초급성·급성 면역 거부반응을 모두 제어하게끔 형질전환됐습니다. 이렇게 다중으로 유전자가 제어된 복제 돼지는 미국·호주·일본 등지에서만 생산한 바 있는 전문 기술의 집약체입니다.

혈액응고 단백질 생산하는 ‘혈우병 돼지’

혈우병은 혈액이 응고되지 않는 병이지요. 선천적인 유전병으로, 피가 잘 응고되지 않으니 다른 사람보다 피가 멈추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혈우병 치료제를 생산하는 형질전환 돼지는 혈액 응고 단백질을 생산하는 유전자를 주입해 만든 돼지인데, 젖을 통해 혈액 응고 물질을 분리할 수 있는 겁니다.

2008년 혈우병 치료제 돼지가 태어나기 전에는 사람 혈액을 정제하거나 동물 세포를 배양해 혈우병 치료제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형질전환 동물을 통해서는 더 적은 비용으로 많은 양의 치료 물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전 세계 혈우병 치료제 시장은 4조원 규모입니다.

당뇨병 치료제 효능 검사용 ‘당뇨돼지’

당뇨병 질환모델 돼지는 당뇨병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생명공학기술을 이용해 인위적으로 돼지에게 집어넣은 것입니다. 당뇨병을 앓는 돼지를 만든 거죠. 특히 성인들이 주로 앓는 ‘제2형 당뇨병’이 유발되도록 조작됐습니다. 당뇨병 환자의 90%가 앓고 있는 제2형 당뇨는 매년 환자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치료제 시장도 같이 증가하는 셈입니다. 모델 돼지는 이런 당뇨병 치료제의 효능과 안전성 검사에 쓰입니다. 돼지는 사람과 생리적 기능이 비슷해 효능 검정 결과의 신뢰도가 높은 편입니다.

항노화 작용 계란 생산하는 닭도

사람의 산화억제 단백질인 SOD(superoxide dismutase)를 계란의 흰자로 분비하는 닭입니다. SOD는 간이나 혈액 속에 있는 생리활성 물질입니다. 활성산소가 산화작용을 하면 우리 몸이 노화되는데, 이걸 막아주는 천연물질입니다. 이 계란은 항산화 기능 외에도 기억력 증진, 항암효과, 혈관생성억제, 관절염 및 심근경색증도 치료할 수 있습니다.

귀한 몸 모시는 SPF 축사, 108억원짜리

‘귀한 몸’ 지노는 호텔을 방불케 하는 집에 살고 있습니다. 2009년 8월 입주한 SPF(Specific Phathogen Free·특정 병원균 제어) 사육장입니다. 864㎡ 규모의 국립축산과학원 SPF 돈사는 108억원 정도를 투입해야 지을 수 있는 건물입니다. 이 안에 수정란 이식 수술실과 인큐베이터, 사육실과 수술실을 모두 갖췄습니다.

이 사육장은 외부의 세균 침입을 철저히 방지합니다. 사육장 안 압력은 외부보다 조금 높은 상태로 유지됩니다(양압). 이 때문에 문을 열면 바깥 공기가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내부 공기만 밖으로 빠져나옵니다. 외부의 세균이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연중 온도와 습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이 돈사는 연간 운영비가 6억8000만원에 달합니다. 이 중 2억원이 연료비입니다. 이렇게 깨끗한 환경이 강조되는 것은 병에 걸린 돼지의 장기를 이식할 경우 사람이 그 병에 감염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노는 방사선 멸균 특별 사료를 먹습니다. 사육 담당자는 소독과 샤워를 거친 뒤 방역복과 방역 마스크·장갑·덧신을 착용한 채 지노를 만납니다.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은 2013년부터 유전적으로 동형화된 지노의 후손들을 국내 연구진들에 제공할 계획입니다. 이후 2015년 무렵이면 영장류 이식 실험도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앞으론 고가 신약을 값싸게 공급할 수 있는 형질전환 동물이 지속적으로 개발됩니다. 그 후보 물질은 백혈병 치료제 ‘과립구콜로니자극인자(G-CSF)’와 족부 궤양 치료제인 ‘이지에프(EGF)’입니다. G-CSF는 백혈병과 항암 치료제의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바이오신약입니다. EGF는 화장품 원료 물질로도 각광받고 있는 물질이랍니다.

※도움말=임기순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 동물바이오공학과 연구관

국립축산과학원 전국에 다섯 곳… 생명공학·품질 개량 등 역할 달라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은 최근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경기도 수원시 본원을 포함해 전국 다섯 곳에 퍼져 있는 축산과학원 농장에 구제역 바이러스가 침범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다섯 곳의 농장에서 키우는 가축은 닭 1만5900여 마리와 돼지 2400여 마리, 한우 1200여 마리 등 모두 2만2400여 마리다. 모두 동물 생명공학 연구 대상이거나 씨앗 가축, 실험용 가축 등으로 가치가 높다.

수원에 위치한 본원(축산생명환경부)은 주로 형질전환 동물 등 생명공학 기술을 개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달 5일 구제역이 발생했던 충남 천안시 축산자원개발부는 종축(씨앗 가축) 자원을 개량하는 것이 주요 임무다. 모두 1만5000여 마리의 종축을 키우고 있다. 약 700마리의 한우를 사육하는 강원도 평창군의 한우시험장은 우량 한우를 감정·선발 하고 한우 고급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전북 남원시 가축유전자원시험장은 사슴·흑염소·면양을 포함한 다양한 동물의 품질 개량 실험을 진행 중이다. 제주도에 있는 난지축산시험장은 제주 흑우와 흑돼지, 말 등을 키우며 관리 기술을 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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