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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나 똑바로 하지 중개업소는 왜 단속해"

조인스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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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종선기자]

10일 오전 서울 강남구 도곡동 도곡렉슬아파트 단지 내 상가. 20여 개 부동산 중개업소의 문이 일제히 닫혀있고 창문에는 버티컬이 쳐 있다.

일대에 전세를 구하려고 중개업소를 찾았던 김상호씨(서울 삼성동)는 그제서야 일대 부동산 중개업소들이 임시휴업 중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발걸음을 돌렸다.

기자와 핸드폰으로 연락이 된 한 중개업소 사장은 “강남구청 직원과 경찰이 중개업소 단속을 벌인다고 해 1월 말부터 11일째 문을 닫고 있다”고 말했다.

이 단지와 가까운 대치동 은마아파트와 미도아파트 주변 중개업소 110곳도 일시 문을 닫았다. 역시 전화로 연결된 대치동의 김모 공인중개사는 “단속반이 중개업소를 뒤지면 중개보조원의 4대 보험 미가입 등 크고 작은 법규 위반 행위가 적발될 수 있기 때문에 단속이 뜰 때는 문을 닫고 피하는 게 상책”이라고 전했다.

정부 단속에 대한 중개업소들의 반응은 차갑다.

"일이나 똑바로 하지 중개업소 단속왜 하는지 모르겠다""전월세 정책실패를 중개업소 탓으로 돌리는 것 같다""중개업소가 국토해양부의 봉으로 보이는 모양이다""시장 돌아가는 것도 제대로 모르고 정책을 만드니 제대로 될 리가 있나. 그래놓고 중개업소가 잘 못해서 그렇다고  둘러댄다""단속 나와서 쓸데없는 것 트집잡으니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중개업소들의 얘기는 끝이없다.

국토해양부가 전셋값 안정을 위해 중개업소의 전셋값 담합 여부 등을 집중 단속하겠다고 하자 단속을 피해 문을 닫는 중개업소가 크게 늘고 있다.

주로 서울 강남ㆍ서초ㆍ송파구 등 강남권 일대다. 그러나 이런 중개업소들의 비정상 영업으로 정작 세입자들은 집을 구하는데 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잠실동에서 전셋집을 구하기 위해 이번 주 초 일대 부동산중개업소를 돌아다녔다는 권모(서울 삼전동)씨는 “중개업소 문은 다 닫혀있고 두 곳 중 하나는 전화 연결도 안됐다”며 “어렵사리 전화 연결이 된 공인중개사와 인근 커피숍에서 만났는데 전세 매물을 갖고 있는 또 다른 공인중개사와 연락이 안 돼 전셋집을 구하지 못했다”고 하소연했다.

잠실 일대 부동산 중개업소 200여곳은 지난달 말부터 이달 9일까지 모두 문을 닫았다. 잠

▲ 정부의 전셋값 담합 단속을 피해 중개업소들이 대거 문을 닫는 바람에 전셋집 구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실동의 이모 공인중개사는 “10일 일단 문을 열었지만 단속반이 뜰 것이란 소문이 돌면 또 다시 문을 닫을 수 밖에 없다”며 “단속 공무원과 중개업소 사이에 이런 숨바꼭질이 벌어지면 긍정적인 효과보다 거래 시장 교란에 따른 부작용이 더 크게 마련”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단속 이후 전세 물건이 더 줄어들고 전셋값 오름세가 심화하는 현상이 일부 나타난다.

담합 행위 적발은 아직 한 건도 없어

도곡렉슬아파트 109㎡형(분양면적)을 세 놓고 있는 권모(49)씨는 “전셋값 오름세가 워낙 심상치 않으니까 정부에서 중개업소를 단속하는 것 아니겠느냐”며 “5월 중순이 전세 계약 만기인데 시간이 지나면 전셋값이 더 오를 것 같으니 조금 더 기다렸다 전세 물건을 중개업소에 내 놓겠다”고 말했다.

도곡동의 김모 공인중개사는 정부의 중개업소 단속이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라고 했다. 그는 “중개업소에서 전셋값을 담합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 아니냐”고 되물었다.

실제로 전셋값 담합 행위는 아직 한 건도 적발되지 않았다.

국토부 부동산산업과 관계자는 “직접 중개업소들을 돌아봤지만 담합 조짐은 발견하지 못했고 그런 행위를 적발했다는 자치단체의 보고도 없다”며 “중개업소의 전셋값 담합에 의해 전셋값이 올라가는 건 아닌 것 같다”고 털어놨다.

정부에서는 전세난 대책 중 하나로 일부 전세 수요를 매매 수요로 돌리는 방안을 검토중이지만 중개업소 파행 영업으로 매매거래가 더 위축되기도 한다.

잠실동의 김모 공인중개사는 “전세 계약도 제대로 안 되는 데 의사결정에 더 신중을 기하는 매매 거래가 잘 될 리 있겠느냐”며 “3930가구나 되는 잠실주공5단지 내 매매거래가 지난달 24일 이후 단 한 건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한편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등 야당이 전세난 해소를 위해 전ㆍ월세 인상률 상한제 도입과 전ㆍ월세 계약 갱신 청구권 보장 등을 골자로 한 대책을 내놓은 데 대해 이 제도가 도입되면 시장에서 제대로 기능을 할지도 관심을 끌고 있다.

일단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갖추고 전ㆍ월세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가격 통제 정책을 쓴다는 점에서 뜨거워진 시장을 안정시켜줄 것이라는 전망과 단기적인 전셋값 급등, 공급 축소 등의 부작용을 가져올 것이라는 관측이 맞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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