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열풍 주도하는 천안교육지원청 나무늘보 동아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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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늘보’의 모든 활동과 성과들은 신념, 열정, 사랑의 산물이다. 몇 줄의 김밥으로 대신하는 저녁식사에도 그들이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은 서로에 대한 격려와 응원의 메시지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영회 기자]

7일 오후 7시 천안교육지원청 위(Wee)센터. 불 꺼진 센터 안 교육실 문 틈 사이로 작은 불빛과 함께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문을 열자 천안지역 중·고등학교 교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었다.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반가움에 떠드는 교사들의 표정에서 학생들의 순수함이 묻어 나왔다. 책상에 둘러 앉은 교사들은 천안교육지원청 ‘나무늘보’ 동아리 회원들로 2주에 한 차례 독서토론회를 갖고 있다. 회원들은 올해 첫 토론대상 도서로 『오리진이 되라』를 선정했다. 이 책은 삼성경제연구소가 운영하는 ‘세리(SERI) CEO’를 만든 강신장씨의 창조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책을 읽고 네 가지 발제(교사로서의 컨셉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파는 장수인가, ‘오리진’이 최우선의 가치인가, ‘오리진’이 되면 진정으로 행복한가)를 뽑았다. 본격적인 토론이 시작되자 회원들의 입가엔 웃음이 사라지고 좀 전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조용옥 회원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는 ‘무엇을 파는 장수인가’라는 문장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가 학생들에게 과연 무엇을 파는 사람이 돼야 하는가. 꿈과 희망을 파는 교사가 되야 하지 않을까. 반성과 함께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해줄 수 있는 컨셉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미영 회원이 이어갔다. “저도 특별한 컨셉 없이 아이들을 만나고 화만 내며 지내온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읽고 아이들의 좋은 모습을 먼저 보자고 다짐했습니다. 올해 컨셉은 아이들이 저를 어렵지 않게 느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실천하는 한 해가 됐으면 합니다.”

 박현숙 회원도 자신의 생각을 덧붙였다. “저도 교사 초임 시절 아이들에게 벌주는 행동을 많이 했습니다. 열정만 있었지 기술이 부족했습니다. 이 책은 이러한 삶의 방향성을 제시해 좋았습니다.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는 경우도 많지만 이 책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좋은 점을 선택하면 될 것 같습니다.”

 이 밖에 회원들은 ▶저자처럼 상황에 알맞은 구체적 사례를 적용하겠다 ▶아이들 입장에서 생각하며 분명한 학급 컨셉을 찾겠다 ▶창조를 만드는 두 가지 원천(아픔을 들여다보는 힘, 기쁨을 보태는 힘)을 수업과 연관 지어 보겠다 ▶사회 곳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 하는 게 진정한 오리진의 모습이며 책을 읽은 각자의 몫이다 등의 주장을 폈다.

 작은 모임인 ‘나무늘보’과 지역 독서교육 활성화는 물론 행복한 독서 열풍을 주도하고 있다. ‘나무늘보’는 침체된 독서교육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1년 전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경범 장학사가 지역 중·고교에 근무하는 국어 교사 가운데 열의를 불태울 적임자를 찾아 나섰고 모두 19명이 동참했다.

 주된 활동은 야간 토론이다. 일과가 끝난 오후 6시부터 토론을 시작하지만 끝나는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다.

밥 먹는 시간이 아까워 저녁 식사는 늘 김밥으로 대신한다. 시간을 줄이고 토론에 집중하자는 회원들의 뜻이 모아져 내린 결정이다.

토론도서는 교사들의 전문성 신장을 위한 자기계발서와 학생이 함께 읽을 수 있는 도서로 선정한다. 분위기는 언제나 활기차고 생동감이 넘친다.

릴레이 토론에서 나온 결과물은 고스란히 학급 운영에 있어 질 높은 교육으로 이어진다. 회원 각자에게도 부메랑처럼 더 큰 가치를 안고 돌아온다.

 지난 1년 간 ‘나무늘보’는 4차례의 독서캠프를 열어 학생들이 독서에 대한 새로운 세상을 눈으로 보고 좀 더 성숙한 ‘평생 독자’가 되는 길을 제시해 줬다.

 토론회에서 선정한 도서를 바탕으로 지역 28개 중학교에서 3~4명의 학생을 추천 받아 책상 위 독서에서 벗어난 체험 중심의 독서활동을 진행했다. 회원들의 노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독서캠프를 통해 학생들은 인공 머리카락을 잘라보거나 ‘마법의 빵’을 만들며 책 속 주인공이 됐다. 학교라는 공간을 벗어나 파주출판문화단지에서 3000만권 이상 진열된 장서, 해마다 아깝게 버려지는 책 무덤 등 평생 접하기 힘든 기회도 가졌다. 엄마와 함께 ‘세상에 하나 뿐인 자신만의 책’을 직접 만들며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기도 했다.

 류창기 교육장은 “학교가 이상하다, 학생이 변했다는 등 말 많고 탈 많은 교육 현실에서 자신이 가진 재능과 시간을 제자에게 쏟아 붓고 스스로 행복에 넘치는 그들을 보면서 학생을 위한 가치 있는 동아리가 좀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강태우 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오리진(origine)=기원, 출처, 유래, 원산지라는 뜻으로 책에서는 스스로 처음인 자, 게임의 룰을 만드는 자, 새 판을 짜는 자, 원조(기원)이 되는 자, 그렇게 세상을 지배하고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창조하는 자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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