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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영웅’고님, 시위 다시 불붙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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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8일(현지시간)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서 와엘 고님(왼쪽)이 시위대에 둘러싸여 연설하고 있다. 구글의 중동·북아프리카 마케팅 책임자인 고님은 지난달 27일 시위 중 경찰에 붙잡혔다가 7일 석방된 뒤 이집트 민주화 시위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그는 페이스북을 통해 민주화 시위를 촉구했다. [카이로 로이터=뉴시스]


30세 청년이 이집트 민주화 시위에 다시 불을 댕겼다. 9일 오후(현지시간) 수도 카이로 중심부의 타흐리르 광장에는 전날과 비슷한 약 20만 명의 시민이 모였다. 16일째 이어져 온 시위 중 가장 큰 규모였던 지난 1일의 ‘100만 행진’ 때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불과 사흘 전 시위 참가자는 2만 명 안팎이었다.

 시민들을 광장으로 다시 모이게 한 주인공은 인터넷 업체 구글의 중동·북아프리카 마케팅 매니저인 와엘 고님(Wael Ghonim)이었다. 더 정확히는 그가 이집트 위성방송 드림TV와 인터뷰를 한 영상이었다.

 구글의 임원인 고님은 지난달 27일 밤 경찰에 체포됐다가 7일 풀려났다. 그의 체포는 경찰이 시위 주동자로 그를 지목했기 때문이다. 그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페이스북에 시위를 촉구하는 익명의 사이트를 운영했고, 경찰은 용케도 추적에 성공했다. 고님은 석방 직후 드림TV와의 인터뷰에서 사회자가 시위 중 숨진 사람들의 사진을 영상으로 보여주자 눈물을 흘리며 “이들의 부모에게 죄송하다. 하지만 내가 원한 것은 이들의 죽음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어 돌연 인터뷰를 중단하고 스튜디오를 떠났다. 고님이 흐느끼는 모습은 동영상 전문 인터넷 사이트인 유튜브를 통해 순식간에 전파됐다.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통해서도 그의 인터뷰 내용이 퍼졌다.

 8일 오후 4시30분 고님이 타흐리르 광장에 등장했다. 시민들은 그의 이름을 외치며 환호했다. 차기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 무함마드 엘바라데이(Mohamed ElBaradei)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나 암르 무사(Amr Moussa) 아랍연맹(AL) 사무총장이 광장을 찾았을 때보다 환영 열기가 훨씬 뜨거웠다. 연단에 선 고님은 “나는 영웅이 아니다. 이 자리에 있는 당신들이 영웅”이라고 말하고 “이념과 정파를 초월해 모두 한마음으로 이집트를 위해 싸우자”고 외쳤다. 광장의 시민 중 상당수는 그를 직접 보기 위해 왔다.

 페이스북에는 고님을 시민 대변인으로 추대하는 곳이 생겨났다. 9일까지 15만 명 이상이 이에 동의를 표시했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엘바라데이도, 정치적 조직을 가진 ‘무슬림 형제단’의 간부도 아닌 무명의 청년이 시위의 구심점으로 부상한 것이다. 시위대는 휴일인 11일에 다시 광장으로 집결할 것을 다짐했다.

한편 조 바이든(Joe Biden) 미국 부통령은 오마르 술레이만(Omar Suleiman) 이집트 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비상계엄 즉각 해제와 야당 인사들과의 폭넓은 대화 등을 촉구했다.

카이로=이상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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