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영아의 여론女論

한국 최초 여성 스케이터 등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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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이 영 아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연구원

“일반 가정부인들은… 춘하추동 사기(四氣)를 방 속에서 보건운동의 필요도 모르고 지냈기 때문에 신체 발육은 점점 약하여 가며 얼굴에는 혈색이 없이 누렇게 되어 갑니다… 여성 독자 제씨여, 지금은 보건운동 중에도 가장 고결하고 경제적 스포츠인 윈터스포츠 시즌, 즉 스케이트 시즌이 왔습니다.”(정보라, ‘여성과 스케이팅’, 『여성』, 1937.2)

 여성들에게 스케이트를 권하는 위 글의 필자 정보라(鄭保羅)는 경성치전을 졸업하고 미국 유학 후 세브란스·서울대 교수를 역임한 치의학자였다. 또한 그는 ‘피규어 스케잇 구락부’의 멤버로 활동한 스케이팅 선수(男)이기도 했다.

 당시 여성들이 정말 겨울스포츠로 스케이트를 즐겼을까. 여성들에게 스케이트가 대중화되기는 쉽지 않았다. 여성들의 야외운동 자체가 흔치 않았던 데다 당시 스케이트화 한 벌이 일반 서민들로서는 살 엄두도 내기 힘든 10~20원(1930년대 평균 월급이 신문기자 50원, 여직공 12원)의 고가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국 여성 빙상스포츠계에도 선구자들은 존재했다.

 한국에 서구식 스케이트가 소개된 것은 1890년대 중반 조선을 방문한 서양인들에 의해서였다. 그리고 1920년 2월 8일 매일신보사 주최로 한강에서 ‘전선(全鮮)빙활대회’가 열리면서 전국적 규모의 빙상경기가 시작됐고, 조선체육회가 주관한 대회로는 1924년 1월 13일 경복궁에서 열린 ‘조선빙상선수권 경기대회’가 그 시작이었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여성들 중에 스케이트를 타거나 빙상대회에 참가한 경우는 없었다. 여성에게 빙상대회 참가가 허용된 것은 5년 뒤부터였지만(『동아일보』, 1929.1.11) 홍보에도 불구하고 신청자가 없었다. 그러다가 이듬해 대회에서 이혜석(李惠錫)이 단독 출전하면서 여성 스케이터가 등장했다(‘만록총중일점홍(萬綠叢中一點紅)’으로 활약한 여자의 초(初)기록 작성’, 『동아일보』, 1930.1.27)

 그리고 1934년 1월 27일에는 ‘조선직업부인회’ 주최로 한국 최초의 ‘여자빙상경기대회’가 열렸다(‘명랑한 근대여성’, 『매일신보』, 1934.1.29). 이 대회는 “춘, 하, 추도 오히려 깊은 겨울 삼아 규문(閨門)에 깊이 들어앉은” 여성들에게 또 하나의 ‘문턱’을 넘어서게 하려는 취지로 개최됐다. 여기에선 김려애(金麗愛)·이명주(李銘珠) 등이 포함된 ‘재동 팀’이 우승했다. 이러한 초창기 여성 스케이터들이 용감히 문밖으로 나와 빙판 위를 달렸던 덕분이 아닐까? 이번 겨울아시안게임에서도 또 한 번 그랬듯, 오늘날 우리가 한국의 멋진 여성 빙상스타들을 볼 수 있는 것은.

이영아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