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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상위권 대학 대학생'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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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수능시험 소식이 뉴스의 첫머리를 장식한다. 어느 방송사든 요즘의 카메라 일정에는, "도선사行"이 꼭 들어있다. 백일기도를 드리고 있는 어머니들 모습을 찍기 위해서다. 아이들, 대학 잘가게 해달라고 빌고 있는 어머니들 모습은, 꽤나 애처롭다. 언제나 돼야, 우리 어머니들이 저런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도 퍼뜩 나 자신도 저러기까지 금방이라는 사실에 가끔 몸서리까지 처지는 사람들이 아마도 대다수일 것이다.

새로운 세기가 내일이라면서 우리의 교육현실은 예전과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 "대입"이 "수능"정도로 표현만이 바뀌었을까? 입시때가 되면 온 나라가 몸살을 앓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전혀 변한 것이 없다. 아이들 대학시험 때문에 은행문이 1시간 뒤에 열리고 공무원들의 출근시간이 조정되는 가 하면 심지어 비행기 이착륙까지 금지되는 나라가 지구상에 딱 하나, 여기 대한민국이다. 날씨까지도 이맘때가 되면 꼭 추워지는데, 올해도 꽤나 쌀쌀했다.

현행 대학입시제도가 합리적으로 운영되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것은 논외로 치자. 많은 사람들이 입에 거품을 무는 난상 토론의 소재임에는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가 되면 자신의 아이들을 추운 입시장으로 모는 이유는, 그나마 이 방법만이 많은 학생들에게 공평한 기회를 준다는 믿음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자식이 안타깝고 미안해서 무릎이 시리도록 부처님께 비는 것이다. 그것이 부모 마음이다.

댄스그룹 SES의 멤버 누군가가, 이른바 상위권 대학의 영어교육학과에 특차 입학됐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안좋았던 부모들이 많았다고 한다. 대부분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런 식이면 누가 공부해서 대학가려고 하겠느냐는 것이다. 전부들 연예인하겠다고 나설 판이라는 것. 그렇지 않아도 연예인이라면 숨넘어가는 것이 요즘 아이들인데, 거기다 대학 입학에까지 특혜를 준다면 도데체 어쩌자는 거냐고 항의하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로 PC통신에서는 이 문제로 격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아마도 SES의 멤버를 특차 입학시킨 대학에서는 그를 학교 홍보에 이용하려는 생각인 것 같다. 대학이라는 것이 연예인을 동원해 홍보를 해야할 만큼 마켓팅이 필요한 것인지, 판단이 잘 안선다. 물론 연예인이라고 대학을 가지말라는 법은, "절대"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대학을 가서, 좀 더 나은 고등교육을 받는다는 건 당연히 좋은 일이다. 또 운동선수들이 체육특기생이란 제도의 혜택을 받듯이 연예인들도 같은 경우라고 생각하면 되지 않느냐는 얘기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면 가수학과나 연기학과같은 전공 분야 학과에 들어갔어야 옳다. 일반학과에 입학하는 것은 얘기가 다르다. 이 특차입학생때문에 정원의 한명은, 3년동안 야간 독서실이나 학원에서 졸음을 쫓아내며 열심히 공부했던 한명은, 대학입학의 문을 통과하지 못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무엇보다 연예인들이 대학 입학전부터 활동을 시작했다는 것은, 대학을 가는 것보다 사회 전문인의 길을 먼저 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 청소년들에 비하면 이들은 이미 어느 정도 인생의 기회를 포착한 사람들이라는 얘기다. 거기에 대학입시의 특혜까지 부여한다는 것은 자칫 많은 학부모들의 분통을 터뜨리게 할 수 있다.

아이를 키우게 되면 자연스럽게 우리나라의 교육문제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다. 흔히들 "요즘 아이들"이라 불리는 청소년들과 조금이라도 얘기를 해본 사람이라면 우리의 교육현실이 얼마만큼 큰 문제에 휩싸여 있는지 깨닫고 경악하게 된다. 열에 아홉은 장래의 꿈이 연예인, 인기스타다. 부모라면 대부분, 모두 다 연예인만 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느냐, 그래도 공부가 먼저라고 꾸짖기 쉽다. 하지만 이번처럼 "연예인=상위권 대학 대학생"이란 등식이 계속되는 한 아이들에게 그런 얘기가 얼마나 먹힐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러다가 정말, 차라리 연예인이나 되라고 아이들을 나이트 클럽이나 술집으로 모는 부모가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기성세대들이 사회가 굴러 가는 원칙과 룰에 대해 정확하게 답하지 못하게 하는 현실은 요즘 한창 문제가 되고 있는, 이른바 "난장판 교실"을 만드는 주범이다. 원칙을 갖고 대할 수 없으니 아이들을 제대로 꾸짖거나 벌하지도 못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학교 교육이 아이들에게 끌려다니고 있는 것이다. 공부에 관심이 있는 몇몇을 빼고 아이들이 학교에 나오는 이유는 오로지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서라고 한다. 수업도중에 도시락을 먹는 아이, 다른 반을 왔다갔다 하는 아이, 오히려 내리 잠만 자는 애들은 걔중에서 착한 애들이라는 얘기까지 있을 정도라고 한다.

공부를 하고싶어 한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아이들에게 왕따가 되는 시대. 그보다는 연예인들의 신상명세나 노래가사를 줄줄 외워야만 다른 아이들 틈에 낄 수 있는 시대. 누가 감히 우리의 미래가 밝다고 얘기할 수 있겠는가. 연예인이 우상은 될 수 있어도 백퍼센트 삶의 목표여서는 곤란하다. 아이들로 하여금 그렇게 생각하게 만드는 사회분위기가 되어서는 안된다. 그렇지 않아도 노래방이니 뭐니 해서 전국민의 가수화, 전국민의 연예인화를 만들고 있는 세상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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