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금융시스템도 '제3의 길' 찾아야…日대장성 구로다 재무관

중앙일보

입력

"자본자유화가 늘 좋은 것은 아니다. 국제금융시스템도 이제는 제3의 길을 찾아야 한다."

일본 대장성의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55)재무관이 18일 요미우리(讀賣)신문에 '국제금융시스템 제3의 길' 이라는 기고문을 게재했다.

'미스터 엔' 사카키바라 에이스케(□原英資)의 후임으로 지난 7월 재무관에 취임한 그는 국제금융시장의 '파워맨' 중의 하나다. 평소 언론에 나서기를 자제하는 그가 모처럼 소신을 펴 일본은 물론 국제금융계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다음은 주요 내용.

97년 여름 태국에서 시작된 통화위기는 눈깜짝할 사이에 인도네시아.한국으로 번졌다. 아시아에서만 약 1천억달러가 빠져나갔다고 한다. 98년에는 러시아.중남미에서도 통화위기가 일어났다. 전세계 신흥시장이 대부분 위기를 경험한 것이다.

이런 동시 다발적인 통화위기는 개별 국가의 문제점 탓이 아니라 국제금융시스템 자체의 결함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에 따라 선진7개국(G7)은 국제금융시스템의 포괄적인 개혁에 합의했다.

우선 신흥시장에서의 성급한 자본자유화를 중지하고 금융기관 및 감독기관을 먼저 강화시키면서 단기자본의 유입규제 도입을 검토키로 했다.

둘째는 헤지펀드들이 금융위기를 일으키지 않도록 이들과의 거래 금융기관에 대한 리스크 관리를 강화키로 한 것이다.

셋째로는 그래도 신흥시장에서 통화위기가 발생할 경우 국제통화기금이 일방적인 구제금융에 나서는 대신 선진국의 대출은행에도 책임을 지우기로 했다. 특히 이 경우 때로는 채무불이행을 전제로 채무를 조정하는 방안도 포함돼 있다.

이 세가지 사항은 G7의 기존 입장과는 1백80도 달라진 것이다. 시장경제의 옹호자였던 미국과 영국이 이에 합의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세계적인 통화위기가 그만큼 충격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자본자유화가 늘 바람직하며 필요한 것은 투명성 뿐이라던 종래의 사고방식은 자취를 감추게 됐다. 금융감독의 강화, 자본이동 규제, 민간부문에 대한 개입 등 공적 부문에 의한 시장기능의 보완이 폭넓게 논의대상으로 떠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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