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박수 받다 비난 받은 해적 수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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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김상진
사회부문 기자

삼호주얼리호 석해균(58) 선장이 ‘아덴만 여명작전’ 중 총격을 받고 중태에 빠졌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인터넷은 뜨거웠다.

“빨리 석해균 선장이 일어서기 바란다”는 글이 넘쳤지만 “이상한 점이 있다”며 의혹을 제기하는 글도 꽤 있었다. 이런 내용이었다. ‘석 선장, 과연 해적이 쐈나.’ ‘AK소총에 맞은 것이라면 몸이 산산조각 나야 한다. 그런데 왜 총탄이 석 선장 몸속에 박혀 있나.’ ‘아군의 MP5 기관총에 맞았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의혹에 대한 정부와 정치권의 반응은 이랬다. “당시 석 선장이 인질로 잡혀 있던 장소에선 교전이 없었다. 석 선장의 총상은 해적의 총에 의한 것”(국방부). “이런 주장을 한 사람들은 우리 사회의 갈등을 부추기려는 의도가 있다.”(한나라당 안형환 대변인).

 그런데 7일 남해지방해양경찰청의 해적 수사 최종 브리핑에서 김충규 수사본부장의 입에서 나온 말은 깜짝 놀랄 만한 것이었다. “석해균 선장 몸에서 나온 탄환 3발 가운데 한 발이 한국 해군이 사용하는 총탄으로 추정된다.”

 이 내용은 해경의 애초 발표 자료에는 빠져있었다. 기자들이 거듭 질문을 하자 김 본부장은 마지못해 이런 사실을 털어놨다. 만약 질문이 없었다면 어물쩍 넘어갈 요량이었다.

 해경은 석 선장 몸에서 빼낸 탄환 3발을 일주일 전에 확보했다. 이미 당시 3발의 탄환 중 한 개가 한국 해군의 총알이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이런 사실을 즉각 밝혔더라면 불필요한 오해를 살 필요가 없었다. 인터넷 공간에서 서로 비난하고 싸우는 사회적 갈등도 줄일 수 있었다.

 해경은 이번에 국제적으로 신뢰받는 수사를 하기 위해 해적들의 인권을 철저히 보호했다. 해적들의 음식에서 돼지고기를 제외했고, 유치장에서 종교의식을 치를 수 있도록 배려도 했다.

 그런데 결정적인 한 가지를 놓쳤다. 국민의 신뢰다. 수사본부의 발표 직후에 인터넷에는 “그럴 줄 알았다. 경찰이 그동안 국민을 속인 게 아니냐”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과거에도 경찰의 이런 진실 감추기는 빈번했다. 그럴 때마다 “앞으로는 국민 앞에 한 점 의혹이 없도록 확실히 밝히겠다”며 사과를 했다. 그런데 이 사과, 말뿐이었다.

 국민은 석 선장 몸에서 한국군의 총탄이 나왔다고 해서 구출작전을 펼친 군을 나무라지 않을 정도로 성숙해 있다. 다만 사실을 숨기면 사정이 달라진다.

김상진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