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파야 혁명’ 현장을 가다] “돈은 나중에 벌어도 되지만, 이번 기회 놓치면 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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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민주화 시위의 메카가 된 카이로 시내 타흐리르 광장. 시위 13일째인 6일에도 수만 명의 시민이 모여 호스니 무바라크(Hosni Mubarak)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칼레드 무아와드(50)와 사미라 엘 가자르(40) 부부(사진). 손을 잡고 다정하게 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곳에 온 게 오늘 처음이냐”고 말을 붙이자 부부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타흐리르 광장에서 모이자는 사발통문이 돌자 첫 시위가 벌어진 지난달 25일부터 13일 연속 출석했다는 것이다.

-매일 시위하러 오면 일은 언제 하고 아이들은 누가 돌보나.

 “어차피 일은 못한다. 비즈니스가 올스톱 상태다. 불행히 아이들은 아직 없다.”(부인)

-왜 매일 이곳에 왔나.

 “이집트를 위해서다. 이집트의 새로운 출발을 위해서다.”(남편)

-시위를 하면 이집트가 새 출발을 하는 건가.

 “8000만 인구의 40%가 하루 2달러 미만의 돈으로 살고 있는데 무바라크 일가는 해외에 700억 달러를 숨겨 놓고 있다. 대학을 졸업해도 젊은이들은 일자리가 없다. 새로운 땅에서 기회를 찾아보려고 몰래 지중해를 건너다 빠져 죽는 젊은이만 매년 수백 명이다. 역사로 보나 문화로 보나 이집트는 이런 형편없는 나라가 아니다. 무바라크 30년 독재 체제가 이집트를 망쳐놓았다. 그걸 깨자고 여기에 나와 시위를 하고 있는 거다.”(남편)

-무바라크가 9월 임기만 마치면 퇴임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나. 6개월을 못 기다리나.

 “그거 다 속임수다. 그동안 챙길 것 다 챙기고, 자신과 가족의 안전을 도모하겠다는 것 아닌가. 새 출발을 위한 상징적 조치로 그의 즉각 퇴진이 필요하다.”(부인)

-당장 그가 사임하면 혼란이 심각하지 않을까.

 “핑계다. 광장을 보라. 얼마나 평화롭고, 질서정연한가. 또 얼마나 깨끗한가. 무바라크가 없어도 이집트는 잘 굴러갈 수 있다. 두고 보라.”(남편)

-그동안 위험하진 않았나.

 “기본적으로 평화로운 시위다. 물론 위험한 순간도 있었다. 사복경찰과 정치깡패를 동원한 친(親)무바라크 세력이 점거를 시도하던 2일과 3일은 정말 위험했다. 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그들을 막아냈다.”(부인)

 유혈충돌 당시에도 부부는 현장에 있었지만 무사했다. 젊은이들이 전면에 나서면서 자신들에게는 투석전에 필요한 돌을 나르는 후방지원 역할을 맡긴 덕분이라고 했다. 무아와드는 농산물과 식품 무역업을 하고 있다. 부유층이다. 전형적인 카이로 토박이인 부부는 애국심과 의무감 때문에 광장에 온다고 강조했다.

 “이집트 역사에 이런 순간이 없었다. 돈은 나중에 벌어도 되지만 이 순간을 놓치면 기회는 영영 다시 오지 않는다. 우리는 무바라크가 물러날 때까지 계속 광장에 나올 것이다.” 남편 말에 부인도 고개를 끄덕였다.

-무슬림형제단이 집권해도 좋은가.

 “그들도 국민의 심판을 받고, 결과에 승복하면 되는 것이다.”

 광장은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해방구이자 남녀노소가 어우러진 축제의 장(場)이었다. 승리감에 들떠 있었다. 이들을 광장에서 몰아낼 방법은 없어 보인다. 광장은 여전히 군인들에 겹겹이 둘러싸여 있다.

카이로=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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