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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용사 바꿨더니 ‘세금폭탄’ 20년 뒤 수령액 3779만원 줄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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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삼성증권은 지난해 ‘한 회사에서 다른 회사로 개인퇴직계좌(IRA)를 옮길 때 과세이연이 가능한지’를 국세청에 서면질의했다. 답은 ‘불가능하다’였다. 가입자가 퇴직연금 운용회사를 바꾸면 해약으로 간주돼 퇴직금의 6~35%에 달하는 퇴직소득세는 물론 그동안 발생한 이자에 대해서도 15.4%의 이자소득세를 물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과세이연은 연금 가입자가 한 금융사에서 다른 금융사의 같은 상품으로 갈아탈 때 해약으로 간주하지 않고 비과세하는 것이다. 은행과 증권·보험사 사이를 자유롭게 옮겨다닐 수 있는 개인연금(연금저축)이 이를 적용받는 대표적인 상품이다. 당황한 삼성증권이 금융감독원을 통해 기획재정부와 국세청에 판단 근거를 물어봤으나 ‘관련 법령을 다 찾아봤지만 연금저축과 달리 퇴직연금은 세금을 안 물릴 근거가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퇴직연금 도입 5년이 지나서야 발견된 허점이지만 파장은 크다. IRA뿐 아니라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에도 이 논리는 그대로 적용된다. DC형 퇴직연금과 IRA 가입자 수만 70만 명, 이미 묻어둔 금액은 7조6000억원에 이른다. 이 사실을 모르는 근로자가 퇴직연금 운용사를 바꾸면 타격이 크다. 30세에 입사해 45세에 중간정산 퇴직금 8900만원을 IRA계좌에 넣어둔 근로자가 1년 뒤 다른 회사로 계좌를 옮기면 310여만원의 퇴직·이자 소득세를 물어야 한다. 55세부터 연금을 수령한다면 과세이연을 받을 경우와 비교해 1390만원의 손실을 보게 된다. <그래픽 참조>


세금을 먼저 내느냐, 나중에 내느냐의 차이다. 그동안 다른 금융사로 계좌를 옮긴 것만 IRA 1000여 명, DC형 퇴직연금은 1만여 명에 달할 것이라는 게 금융권의 추정이다. 계좌 이전으로 손해를 보기 싫다고 수익률이 낮은 계좌에 넣어두면 손해는 더 커질 수 있다. 1억원을 10년간 묻어둘 경우 수익률이 5%라면 만기 때 총 1억6290만원을 손에 쥔다. 수익률이 4%로 떨어지면 만기 수령 금액이 1억4802만원으로 뚝 떨어진다.

 퇴직연금을 도입한 회사들도 고민에 빠졌다. DC형 퇴직연금은 형식상 사용자와 금융사가 계약자로 돼있지만 세금은 수익자인 근로자를 기준으로 매긴다. 국세청 해석에 따르면 회사가 퇴직연금 운용사를 바꾸거나 근로자가 이직할 경우 퇴직·이자 소득세를 고스란히 물어야 한다. 강원랜드는 지난해 2월 퇴직금 중간정산을 하며 가장 높은 금리를 제시한 5개 금융사의 IRA상품을 임직원에게 추천했다. 1년 만기가 지나면 다시 경쟁을 붙여 임직원의 노후자산을 조금이라도 더 불려줄 계획이었다. 하지만 기획재정부와 국세청의 유권해석이 알려지면서 기존 계약을 옮겨주기 어렵게 됐다.

 금융사들 역시 입을 내밀고 있다. 퇴직연금은 가장 빠르게 커지고 있는 시장이다. 지난해 말 29조원인 시장 규모가 올 연말 50조원으로 불어날 전망이다. 55개 은행·증권·보험사가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시장 비중은 크지만 수익성이 빤한 확정급여(DB)형보다 IRA와 DC형이 경쟁의 초점이다. 최초 가입자에겐 미끼금리를 주고 다른 회사 가입자는 이자를 더 많이 주겠다며 끌어온다. 한 생명보험사의 퇴직연금 담당 임원은 “고객에게 그동안 ‘연금저축처럼 언제든지 운용사를 바꿀 수 있다’고 설명해 왔던 게 한순간에 거짓말이 돼버렸다”며 “금리가 낮은 일부 금융사는 이미 재정부와 국세청의 입장을 계좌이전을 해주지 않는 핑계로 삼고 있다”고 전했다.

나현철·한애란 기자

◆퇴직연금=확정급여(DB)형, 확정기여(DC)형, 개인퇴직계좌(IRA)가 있다. DB형은 기존 퇴직금처럼 나중에 은퇴할 때 미리 정해 놓은 만큼을 받는 것이다. DC형은 매달·분기·반기 혹은 매년 한 차례 적립금을 받아 개인이 굴린다. IRA는 직장을 옮기거나 중간 정산을 해서 받은 퇴직금을 굴리는 계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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