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군사회담,‘정치성’ 벗어나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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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전옥현
전 국정원 1차장

북한의 천안함 폭침, 연평도 도발로 남북관계가 얼어붙은 가운데 8일 남북 군사실무회담이 열린다. 이번 회담에선 북한이 올 초부터 벌여온 대화공세가 얼마나 진정성을 갖고 있는지 드러날 것이다. 북한이 진정성을 보이지 않을 경우 현 한반도 안보환경은 북한의 속임수나 1~2년도 안 되어 휴지조각이 되어버릴 말장난에 불과한 협상을 용납할 수 없을 정도로 엄중해진다. 따라서 정부의 의연하고 전략적인 대응이 요구된다.

 무엇보다 정부는 남북관계의 ‘역사성’을 바로 세워나가야 한다는 인식하에 회담에 임해야 한다. 불행하게도 과거 남북 간 대화의 역사는 ‘역사성’보다는 오히려 ‘정치성’에 따라 좌우돼 왔다. 과거 역대 정부에서 만들어진 남북 간의 제반 합의서-1972년 7·4 남북 공동성명, 91년 남북기본합의서 및 비핵화 공동선언-들은 남북관계를 규율하는 중요한 역사적 문서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매우 유감스럽게도 어느 것 하나도 북한의 불성실한 태도로 지금까지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 것은 없고, 이를 바로잡겠다는 역대 정부의 문제의식도 부족했다. 이러다 보니 북한은 연평도 도발에 대해서도 사과 한마디 없이 뻔뻔스럽게 우리를 대화에 나오라고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정치적 필요에 의해 남북관계를 관리하지 않겠다는 기본원칙을 이번 군사회담에서부터 일관되게 지켜나간다면, 과거 정부의 ‘정치성’을 뛰어넘어 한반도 냉전 구도의 한 축을 허무는 데 기여하게 될 것이다. 또 이명박 정부는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나 실적에 연연하지 않고, ‘정치성’을 배제한 채 올바른 남북관계 설정을 위한 ‘원칙’ 하나는 확실하게 지켜냈다는 후대의 역사적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북한도 이제는 케케묵은 통일전선 차원의 대화공세를 접어두고 역사의 새로운 부름을 두려워하면서 ‘통 큰 진정성’을 갖고 대화에 나서야 한다. 특히 긴 안목의 ‘역사성’이 결핍되었던 대북정책이 결국 그간의 막대한 인내와 지원에도 불구하고 연평도 도발 같은 전쟁행위를 유발하고 고농축 우라늄으로까지 핵무장 하려는 북한이라는 실체와 마주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기막힌 현실을 만들고 만 것이다.

우리는 이번 남북 군사회담에서 ‘역사성’을 갖고 북한의 진실성을 검증해야 하며, 우리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조치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 6·25 이후 최대의 무력 도발인 연평도 사건 이후 처음 남북 대화에 임하고 있는 지금, 미국이 9·11사태를 당했을 때 행동했던 것처럼 정부의 강력한 대처, 국민의 지지, 그리고 여야를 초월한 초당적 협조가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된다. 강력한 군사적 힘의 우위를 토대로 냉전체제를 붕괴시킨 레이건 리더십의 교훈도 다시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

전옥현 전 국정원 1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