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view &] SW산업 발전의 걸림돌, 상명하달 시스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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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김홍선
안철수연구소 대표이사

“소프트웨어(SW)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인식부터 바뀌어야 하니까요.”

 어느 외국인 투자가가 내게 한 말이다. SW산업이란 단순히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문화·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수반되어야만 성장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한국의 수출 상품 중 정보기술(IT)이 차지하는 비중이 갈수록 늘고 있다. 가히 국가 성장을 이끄는 핵심 동력이라 할 만하다. 그중 SW의 비중은 극히 낮다. 게다가 지난해 불어닥친 애플발 스마트폰 열풍은 SW산업의 파워를 충격적으로 깨닫게 했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어디에서나 SW를 육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지만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나 구체적 실천 방안을 마련하기란 쉽지가 않다. 기술 개발, 교육 개혁, 투자 환경 개선 등의 방안들이 거론된다. 하지만 여전히 SW산업 종사자는 먹고살기 힘들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학생들은 컴퓨터공학과 진학을 꺼린다. 이 분야에서 비전을 찾기 힘든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다.

 경제 위기 속에서도 미국이 IT 분야에서만큼은 확고한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는 건 발달한 SW·콘텐트 산업 덕분이다. SW만큼 미국이 절대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업종도 드물다. 인도·이스라엘·독일 등도 일부 지분을 갖고 있지만 이 분야의 원천 기술과 글로벌 표준, 비즈니스 플랫폼을 주도하는 건 분명 미국이다. 특히 최근 몇 년간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스마트 혁명은 우리의 라이프 스타일과 사업 모델을 크게 바꾸고 있다. 창업한 지 얼마 안 된 IT기업들의 성공 스토리가 줄 잇는 배경에는 갖가지 아이디어를 현실화할 수 있는 장(場), 즉 앱스토어·페이스북·아마존 등 유연한 SW플랫폼들이 자리해 있다. 그들이 구축해놓은 광활한 가상세계 안에서 혁신적 아이디어와 발명품들이 잇따라 탄생하고 있다.

 이를 지켜보며 우리 정부와 관련 업계도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한편으론 ‘SW 역시 과거 산업 개발 시대처럼 몰아붙이면 되지 않겠느냐’는 막연한 기대감이 엿보인다. 그러나 SW는 그리 단순하게 접근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볼 수 있는 것도, 만질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목표가 고정돼 있지도 않다.

 하드웨어 산업은 향상된 기능과 원가 절감이 개발 포인트다. 선진 기술을 열심히 쫓는 동시에 치밀한 관리 시스템을 확립하면 어느 정도 추격이 가능하다. 그런 관점에서 제조업의 핵심 성공 요소는 집중력과 조직력이다. 반면 SW산업의 본질은 ‘소통’이다. SW는 인간의 사고 행위를 돕고 인간과 기계 간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 하드웨어의 중심이 기계라면 SW의 기반은 인간이다. 그런 만큼 창의적 SW가 나오려면 각종 기술의 유기적 연계와 함께, 기존 발상을 뒤집는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표현하고 토론할 수 있는 문화적 토양이 필요하다. 아울러 인간 중심, 소통 중심의 사상이 그 설계 단계부터 제품이 고객에 전달되는 최종 단계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유지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기능을 중시하는 산업 구조·분위기 속에서는 ‘제품의 철학’을 운운하는 자체가 어쭙잖아 보이기까지 한다.

 SW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건 좋다. 하지만 거기 진정성과 올바른 문제 의식을 담고 있는지 자문해 보아야 한다. 여전히 SW를 하드웨어의 한 기능이자 어쩔 수 없이 치러야 할 비용 정도로 생각하고 있진 않은가, 각 개인의 상상력을 발현할 기회를 주기보다는 여전히 상명하달식 관리와 시스템에 의존하고 있지는 않은가 말이다. 예컨대 우리 산업 구조가 여전히 중소·벤처 기업이 꿈을 펼칠 수 없는 상황이라면 SW산업 진흥이란 실현 불가능한 구호일 뿐이다.

 그러니 SW의 중요성은 단지 수출 액수와 품목을 늘리는 데 있지 않다. 우리 사회와 산업을 보다 유연하고 역동적인 것으로 바꿀 수 있는 실마리가 여기 있다. 특히나 소셜 네트워크와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최근 추세는 더욱 인간친화적인 SW를 요구한다. SW가 우리 산업의 중심이 되길 원한다면 먼저 그 본질을 꿰뚫어볼 일이다.

김홍선 안철수연구소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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