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바이 타고 2100km 고향 간다

중앙일보

입력

 
2일 오후 중국 광둥(廣東)성 선전(深?)시 선전역 앞 광장. 산시(陝西)성 출신으로 선전의 지하철 공사장에서 잡역부로 일하는 천멍잔(陳孟展ㆍ진맹전)씨는 이번 춘절(春節ㆍ설)귀성 표를 구하려고 사흘째 노숙 중이다. 국방색 솜옷 안으로 여러 겹 털옷을 껴입고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표를 구하고 있지만 자포가기 심정이라고 한다. 천씨는 “액면가의 열 배씩 부르는 암표를 살 수도 없고 고향 식구들이 기다리는데 입석표도 구경 못했다”며 발을 굴렀다.

연인원 30억 인구가 대이동한다는 중국의 최대 명절 춘절. 고향으로 향하는 농민공(외지에서 일하는 농촌 출신 인력)들이 한꺼번에 몰려 전국적인 ‘귀성 전쟁’이 벌어지고 열차표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8000㎞ 가까운 고속철을 건설한 ‘고속철도 왕국’ 중국이지만 차표 구하기는 쉽지 않다. 농민공들은 차표를 얻기 위해 사나흘씩 역 앞을 전전하거나 아예 오토바이로 수 천리 귀성길에 오르고 있다.

◇‘그림의 떡’ 고속철=세계 최장(最長)고속철 국가인 중국은 2020년까지 현재 8000㎞ 고속철도망을 배로 늘리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올해에만 1000억달러를 투입해 70여개 도시를 고속철로 연결하는 사업이 진행 중이다.

하지만 서민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2박3일 이상 걸려도 최대한 저렴한 차표를 구하려는 대부분의 농민공에게 완행열차보다 4~5배 비싼 고속철은 선택 사항이 아니다. 최근 개통한 상하이(上海)~쓰촨(四川)성 청두(成都) 고속철 표값은 여객기 운임과 비슷한 수준이다. 인도 힌두스탄 타임스는 ”농민공들이 감당하기엔 너무 비싼 운임에 정차역도 적어 이번 춘제 대이동 때 고속철이 일반 철도의 운송 압력을 전혀 덜어주지 못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이어 ”인도 정부는 중국의 사례를 면밀히 검토, 2012년까지 고속철 도입 논의를 중단키로 했다“고 전했다.

◇오토바이로 고향길 2100㎞= 귀성 열차표를 구하기 힘든 농민공들은 일찌감치 오토바이 귀성 방법을 택하고 있다. 비용도 싸고 표 구하느라 밤을 샐 필요도,교통 체증 염려도 없기 때문이다.인터넷 중고 오토바이 매매 사이트에는 춘제를 앞두고 매물이 자취를 감췄다. 광둥성 둥관(東莞)ㆍ주하이(珠海)의 오토바이 매장은 이달 중순부터 판매량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오토바이 귀향은 주로 고향이 500~1000㎞ 거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인기다. 남경신보(南京晨報)는 장쑤(江蘇)성 난징(南京)에서 쓰촨(四川)성 더양(德陽)까지 2100㎞ 여정을 4일 밤낮으로 이동한 20대 청년 사례를 전하며 ”올해 오토바이 귀성이 예년보다 크게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파의 영향을 덜받아 도로 사정이 괜찮은 중국 남방 지역에선 오토바이 귀성이 다반사가 됐다. 광둥성 교통 당국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10만대가 움직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광둥성에서 내륙 구이저우(貴州)성과 광시(廣西)자치구로 들어가는 길목인 자오칭(肇慶)시는 요즘 321번 국도를 따라 귀향하는 오토바이족이 매일 1000대씩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공안 당국은 도로를 따라 수백 명의 교통경찰을 배치해 오토바이 대열이 안전하게 성 경계를 빠져나가도록 인도하고 있다.

홍콩ㆍ선전=정용환 특파원 narrativ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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