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 “무대 위에서 미치는 것, 한국에서 내가 제일 잘하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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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데뷔 10주년을 맞이한 가수 싸이. 10일부터 20일까지 서울 서강대 메리홀을 시작으로 데뷔 이후 처음으로 소극장 콘서트 투어를 펼친다. “팬들과 새로운 공감대를 형성하고 싶다”고 말했다. [변선구 기자]


싸이(34)는 싸이다. 대체할 다른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다. 본명이 박재상인데, 영 밋밋하다. 아무래도 잘 지은 예명이다. ‘싸이코(Psycho)’를 줄여서 ‘싸이’다. “어딘가에 미쳐있는 사람”이란 뜻이다. 그러니 딱이다. 그의 공연을 겪은 사람들은 안다. 그는 매번 객석을 홀린다. 무엇보다 스스로가 공연에 미치도록 빠져든다. 그가 무대에서 날뛰면, 객석의 혼이 달아난다. “무대에서 미치는 건 한국에서 내가 제일 잘 한다”고 자신하는 그다.

지난해 연말 공연에서 그는 자신의 ‘무대 파워’를 넉넉히 입증했다. 인터넷 예매사이트 인터파크 집계 결과, 김장훈과 함께 치른 ‘완타치’ 콘서트가 연말 공연 전체 매출의 52%를 기록했다. ‘공연의 신(神)’이란 별칭이 괜히 붙은 게 아니다.

 “음악 차트 1위에 오르는 것보다 공연에서 1등 하는 게 5만 배는 더 좋아요. 신곡을 발표하는 것도 실은 콘서트의 레퍼토리를 늘리기 위한 거죠.”

 지난해 말 그는 서울에서만 나흘 연속 콘서트를 펼쳤다. 나흘간 여섯 차례, 공연 시간이 23시간에 달한 대형 콘서트였다. 마지막 무대에 올랐던 지난해 12월 26일을 그는 이렇게 돌아봤다. “육체적으론 도무지 무대에 설 수 없는 상태였어요. 그런데 막상 무대에 오르니까 갑자기 에너지가 솟더라고요.”

 실제 그랬다. 그날, 공연장에선 이런 자막이 나왔다. “지치면 지는 겁니다. 미치면 이기는 겁니다.” 그렇게 마지막 공연은 앙코르를 포함해 네 시간 가까이 물 흐르듯 진행됐다. ‘공연에 미친 남자’ 싸이의 승리였다.

 “제 공연은 관객이 멋있어요. 무엇보다 함께 뛰어주는 관객들이 저를 미치게 하죠. 가수와 관객이 마치 경쟁하듯 서로 열기를 끌어올리는 거죠.”

 그는 소극장을 거치지 않고 곧장 체육관 공연으로 달려간 몇 안 되는 가수다. 독자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재능 덕분이다. 그 재능은 가수 김장훈(44)을 통해 폭발적으로 자랐다. 군 제대 이후 공연 연출 감각이 떨어졌을 때, 김장훈이 ‘완타치’ 공연을 함께 하자고 손을 내밀었단다. 그가 한창 ‘장훈이 형’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마침 전화가 걸려왔다.

 ▶김장훈=웬일로 전화를 다 받냐.

 ▶싸이=오니까 받았지. 형은 대형 가수라 전화가 자주 안 되잖아. 푸하.

 유쾌한 한 토막의 통화를 마무리 한 뒤, 그가 말했다. “늘 재미있고 고마운 형이에요.”

  싸이는 올해로 데뷔 10년째다. 새천년의 초반 10년을 꼬박 인기 가수로 살았다. 하지만 그 10년은 몹시 사나운 세월이기도 했다. 히트곡 ‘새’로 정상에 올랐을 때, 대마초 사건이 터졌다. 2007년엔 병역특례 비리에 휩싸여 군복무를 두 번 하기도 했다. 지금이야 “6년을 군에서 보냈다”는 농을 던질 만큼 덤덤해졌지만, 그 세월이 왜 아프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는 꼿꼿하다. 남들 같았으면, 연예계를 진즉 떠났어야 했을지도 모를 일을 싸이다운 ‘유쾌함’으로 이겨냈다.

 “굴곡진 시간을 통해 많이 성장할 수 있었어요. 대중들이 제 진정성을 알아줬기 때문이죠. 싸이의 진정성이란 100% 오락이에요. 제 음악과 공연의 장르는 오락이거든요. 정상에 있든 추락했든 심각해지지 않고 싸이 본래의 유쾌한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애썼습니다. ‘그러므로’ 10주년을 맞이한 게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맞이한 10주년이라 의미가 더 깊은 것 같아요.”

 그는 데뷔 10주년을 맞아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데뷔 이후 처음으로 500석 규모 소극장에서 공연을 펼친다. ‘싸이의 소극장 스탠딩 10주년 한정판’이란 타이틀이다. 10일부터 20일까지 서울 서강대학교 메리홀을 시작으로 부산·광주 등으로 이어진다. 그는 “무대를 좁힌 만큼 음악과 코멘트에 공을 많이 들일 생각”이라고 했다. 스윙 버전의 ‘새’ 등 다양한 음악 실험도 예정돼 있다. 그렇다고 싸이 특유의 퍼포먼스를 없앤 건 아니다. 체육관 공연에서 쓰던 특수효과 등도 그대로 들여온단다.

 “체육관 공연이 텔레비전이라면, 소극장 공연은 라디오에 가깝죠. 사적인 만남처럼 훨씬 친숙한 공연이 될 거에요. 장훈이 형이 연출을 맡은 만큼 볼거리도 많아요. 여자 가수 패러디를 메들리로 선보일까 해요. 싸이의 소극장 공연은 보이는 라디오라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인정 받는 작곡가이자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하는 가수. 10년 전 그의 꿈이 그랬다. 그의 말마따나 그 꿈은 이제 “어떤 반열에 오른”듯도 싶다. 그런데도 그는 덧붙인다. “데뷔 20주년에는 꿈을 종결 지을 생각입니다. 모든 대중들이 인정하는 가수가 되고 싶어요.”

 올해로 서른넷. 그러나 그는 늘 천진하다. 노래로 세상을 호되게 비틀 때도, 특유의 유쾌함을 잃지 않는다. 하지만 제 아무리 천진하게 살아간들 몸은 늙게 마련이다. 공연에 미쳐 있는 싸이가 마침내 무대에서 물러날 땐 어떤 모습일까.

 “마지막에도 처음 등장했을 때처럼 유쾌하고 화끈하고 멋스럽게 사라지려고요. ‘나, 싸이야!’ 이러면서.” 미침엔 적이 없다. 싸이는 싸이다. 02-333-3753

글=정강현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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