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암사에서 매화 그림 공부할 때 출가 유혹 느꼈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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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를 그리다 보면 나 스스로가 매화를 닮아가게 된다”고 말하는 문봉선 홍익대 미대 교수. 탄탄한 기본기에 현대적 미감을 더해, 절제미가 돋보이는 매화그림을 선보였다. [안성식 기자]


전시장을 가득 채운 것은 온통 매화 그림이다. 서울 인사동 공아트스페이스에서 9~27일 열리는 한국화가 문봉선(50) 홍익대 교수의 ‘묵매화전’. 한국화가 위축된 상황에서 한국화, 그것도 매화 그림만으로 전시장 3개 층을 채운 야심 찬 기획이다. 어쩐지 매화그림이라면 고루할 것이란 예단을 허문다. 수묵화의 현대적 변용으로 유명한 문교수답게, 탄탄한 기본기 위에 절제된 현대적 미감을 더했다. 먹과 화선지 외에 천과 광목, 과슈(불투명 수채 물감)를 썼다. 작은 족자그림에서 전시장 한 면을 채운 대형그림까지 크기도 다양하다.

 이번 전시는 문 교수가 지난 1991년부터 매년 2~3월 전남 순천 등지로 사생 여행을 다닌 결과물이다. 20년간 총 400~500점의 매화그림 중 60점을 골랐다.

 “수묵화라는 제 본업 외에, 또 다른 축 삼아 꾸준히 그려왔습니다. 옛 화보(畵報)나 중국 대가의 기법을 흉내내기보다 나만의 방식을 찾아 사생을 다니기 시작했죠. 사실 매화그림은, 화가의 바닥을 한 눈에 보여주는, 쉽지 않은 그림입니다. 재료해석, 조형능력, 공간감각, 인문학 공부 등이 한눈에 드러나지요. 딱 야단맞기 쉬운 전시랄까요?”(웃음)

 그 역시 “미루고 미루다 그간의 공부를 털고 가자는 뜻에서 용기를 냈다”고 한다. “보통 4군자라면 난초, 대나무, 매화, 국화 순으로 공부하는데 대부분 매화에서 중도하차합니다. 나무의 원리, 조형원리, 붓과 먹의 원리 등을 다 깨쳐야 하거든요. 그림의 기초이자 완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시장 가운데에는 현장에서 그린 밑그림 화집과 매화 소재의 한시 수십 편을 문 교수가 직접 초서로 옮겨 적은 책도 전시된다. 정철·한용운·서거정·이규보 등의 한시다. “시를 모르는 매화그림은 속되지요. 시적인 그림을 위해서라도 시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현장 스케치 화집은 무려 52권이다. 그간의 작업량이 짐작된다.

 “옛 선비들은, 매화를 하나의 인격체라고 했습니다. 생나무 가지 위에 꽃이 피고 죽어버린 줄기에서 어린 새 가지가 돋아나며 7월에 꽃눈이 생겨 가장 오래 기다려 꽃을 피웁니다. 인내와 기다림, 정신성을 상징하는 꽃이죠. 매화를 그리며 오히려 인생에 대해 한 수 배우고, 나 스스로가 매화를 닮아가는 느낌을 갖곤 합니다.”

 문 교수는 일년에 한번씩, 대형전시를 거르지 않는 다작의 작가로 유명하다. 학교와 작업실을 오가는 것 외에는 사생활도 거의 없다. 술자리도 안 즐기고, 작업할 때는 전화 없이 산다. 체력을 위해 매일 오전 6시에 일어나 30분~1시간 조깅으로 시작하는 ‘바른 생활 사나이’다. “어찌 보면 이기적인 삶을 사는 거지만 작업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며 웃는다.

 그는 훌륭한 비서 역할을 해온 아내 한국화가 강미선씨에게 공을 돌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91~95년 전남 순천 선암사에서 매화그림을 공부할 땐 스님과 똑같은 생활을 하다가 출가의 유혹을 느꼈다고도 했다. 그때부터 매년 두 차례 매화와 산수 기행을 이어오는 그다. 그런 뚝심과 인내심이 그를 한국화단의 중추로 만든 동력일 터다.

 정민 한양대(국문학) 교수는 전시 도록 서문에서 “무릇 글 공부든 그림 공부든 발로 해야 진짜 공부다. 문봉선의 그림은 만날 화보를 베끼며 책상물림의 손재주로 익힌 솜씨가 아니다. 쨍한 칼 바람이 불고 서릿발의 기상이 있다”고 썼다. 참고로 그의 학교 연구실 이름은 ‘한향재’(寒香齋·매화향기 나는 서재). 그의 집 마당에는 매화 한 그루가 심어져 있다. 02-730-1144.

글=양성희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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