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구식 ‘칼잡이 수사’ 시대는 끝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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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검찰의 한화와 태광그룹 수사가 총수와 관계자들을 배임과 횡령 등 혐의로 기소하면서 일단락됐다. 그러나 여파(餘波)는 크다. 갑작스러운 검찰 고검장급 인사나 수사를 책임졌던 지검장의 사표는 도도한 강물 위의 나뭇잎이다. 시대 변화의 흐름을 나타내는 표징인 것이다. 그 방향은 수사의 첨단·선진화다. 이를 어제 취임한 한상대 서울중앙지검장이 적확(的確)하게 짚었다. 바로 원칙과 정도를 지키는 수사, 그리고 수사기법과 방식의 진화다.

 두 재벌그룹에 대한 수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급작스러운 서거로 중단된 사정(司正)의 재개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결과는 초라했다. 장장 137일에 걸쳐 13차례 압수수색에 관계자 321명을 줄줄이 소환했으나 한 명도 구속시키지 못했다. 비록 기소와 구속은 별개이고, 불구속 수사가 원칙이라지만 검찰의 줄기찬 영장 재청구는 역설적으로 의욕만 앞선 부실수사를 스스로 자인(自認)한 꼴이 됐다. 오죽하면 법원이 “범죄의 소명이 부족하고, 피의자의 방어권이 필요하다”고 거푸 반려했겠나. 이는 직접적으로 무능한 수사, 전근대적인 인신(人身) 압박수사를 지적한 것 아니겠나. 태광그룹 수사도 회장을 구속했다고는 하지만, 당초 기대했던 정경유착을 밝혀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과녁을 비껴간 것이다. 결국 요란하게 시작한 수사가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 격이 됐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본디 검찰의 특수수사쯤이면 진검(眞劍)의 위용이 있어야 한다.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를 명분으로 신속하게 급소를 찌르는 쾌검(快劍)이다. 그런데 섣부른 외과의사처럼 여기저기 째고서 “여기가 아닌가” 하는 수사는 일단 묶어놓고 ‘네 죄를 알렷다’라며 치도곤하는 옛날의 원님보다 나을 게 없다. 그런 점에서 서울중앙지검장이 “무능과 진실과 청렴 여부를 떠나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한 것은 성찰(省察)의 자세다. 그가 주문한 절차의 정당성과 투명성을 확보한 수사, 보물찾기 식을 지양한 과학적 수사는 지극히 당연하다. 수사의 검(劍)은 정의(正義)로 예리하게 벼리고, 손잡이는 국민이 쥐는 그런 ‘스마트 검찰’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