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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수의 딜레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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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공범 2명이 따로 조사받게 됐다. 죄를 자백하면 통 크게 봐주겠단 제의를 받는다. 둘 다 부인하면 무죄 석방. 하나 자기만 입 닫고 공범이 털어놓으면 혼자 중형이다. 어찌해야 하나. 이론적으론 서로 끝내 잡아떼는 게 최선이다. 그럼에도 공범이 자백할 위험 탓에 죄를 시인하는 게 현실적인 상책이다. 사회과학 전반에 큰 영향을 준 ‘게임이론’에 나오는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다. 최선책을 선택하지 못하는 불신의 비극이다. 게임이론의 선구자 존 폰 노이만은 이랬다. “완벽한 의사소통과 완벽한 정직성이 있는 세계엔 죄수의 딜레마란 없다. 그러나 그건 우리 세계가 아니다”라고.

 이 딜레마는 시공(時空)을 초월한다. 핵 감축이 최선인 줄 알면서 냉전시대 내내 미국과 소련은 핵무기 경쟁을 벌였다. 지난해 말 위안화 절상과 관련, 환율전쟁과 보호주의의 위험을 여기에 빗댄 건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었다. “각국이 제 이익만 추구하면 세계경제가 아무도 원치 않는 죄수의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였다.

 죄수로선 기막힌 일이지만 수사 측에선 이만한 게 없다. 담합기업들의 자백을 얻어내는 ‘자진신고감면제도(leniency program)’도 실은 죄수의 딜레마를 활용했다. 담합을 먼저 실토하는 회사는 벌금을 감해 준다. 이리 되자 조사만 들어가면 술술 털어놓는 회사들이 줄을 선다고 한다. 찜찜하지만 지난해 말 4개 대만 업체와 LG가 유럽연합(EU)으로부터 6억5000만 달러의 담합 과징금을 얻어맞은 와중에 삼성만 빠져나온 것도 이 덕이었다.

 배신이 능사인 세상 아니냐고 슬퍼할 건 없다. 죄수의 딜레마가 이어지면 참여자들은 배신 아닌 협력이 최선임을 차츰 깨닫게 된다. 제1차 세계대전 때 참호를 파고 피나게 싸우던 영국과 독일 병사들도 저절로 끼니 때면 포격을 멈추었다. 딱히 제재 수단 없이도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잘 굴러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로버트 아우만이 제창한 ‘무한 반복게임 이론’이다.

 완강히 잡아떼던 소말리아 해적들이 입을 열기 시작한 모양이다. 첫날 “총 쏠 줄도 모른다”고 발뺌하다 하루 만에 특수전 요원들에게 사격한 건 인정했다. 한 해적은 동료를 지목하며 “그가 석해균 선장을 쐈다”고 했다 한다. 어디든 죄를 시인하며 용서를 빌면 참작해 주는 게 인지상정(人之常情)임을 그들도 알 터다. 소말리아 해적들이 진정한 죄수의 딜레마에 빠진 듯싶다.

남정호 국제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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