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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틀콕 최고 시속 332㎞ 총알 막는 경호원들 필수 종목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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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호 14면

2008 베이징 올림픽 혼합복식 챔피언 이용대 선수의 호쾌한 스매시 모습. 이용대는 TV에 출연해 스매시로 수박을 깨는 묘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중앙포토

전두환 전 대통령(이하 ‘전통’이라고 줄임)은 배드민턴을 무척 좋아했다. 그는 재임 시절 방수현 선수(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배드민턴 여자단식 우승)를 불러 레슨도 받고 함께 경기도 즐겼다고 한다.설악산 백담사에 유배 갔던 시절, 전통의 경호를 맡고 있던 요원들과 백담사 스님들이 배드민턴 시합을 했다. 결과는? 경호원들의 완패였다. 전통은 불같이 화를 냈다. “유사시에 나를 위해 몸을 던져야 할 사람들이 늙은 스님들한테 져서야 되겠느냐.”

정영재의 스포츠 오디세이 ② 0.15초의 승부, 오묘한 배드민턴 세계

하지만 전통도 잘 알고 있었다. 배드민턴이란 종목의 특성을. 제아무리 힘 좋고 날랜 사람도 제대로 배우지 않으면 20년 운동한 할머니를 이길 수 없는 게 배드민턴이다. 전통은 경호원들의 ‘군기’를 잡는 방편으로 배드민턴을 선택한 것이다. 지금도 대통령 경호처 요원들이 무술 수련을 빼고 가장 많이 하는 스포츠 종목이 배드민턴이라고 한다.배드민턴은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스포츠다. 남자 선수들의 스매시는 시속 300㎞를 간단히 넘는다. 공식 최고 기록은 중국의 푸하이펑이 갖고 있는 332㎞다. 프로골퍼 장타자 버바 왓슨의 드라이버샷(310㎞)도, 테니스 스타 앤디 로딕의 ‘광속 서브’(246㎞)도 따라올 수 없는 스피드다. 2005년 국내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잰 김동문 선수의 스매시는 시속 345㎞가 나왔다.

그런데 이 무시무시한 스피드도 중력의 법칙을 이기지 못한다. 셔틀콕은 20m도 채 날아가지 못하고 속력이 확 줄면서 수직낙하를 시작한다. 중력에 자유롭지 못한 셔틀콕 덕분에 사람들은 속도의 압박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그래서 배드민턴은 남녀노소 누구나 좁은 공간에서 즐길 수 있는 국민 스포츠가 됐다. 스포츠 오디세이가 배드민턴의 오묘한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전두환 경호원, 백담사 스님에 완패
배드민턴의 유래는 영국 기원설이 유력하다. 18세기 옛 글로스터셔(현재 에이번 주)의 배드민턴 마을에서 뷰포트 공작 가족이 배틀도어(우리나라 제기와 비슷한 기구)를 이용한 놀이를 게임으로 발전시켰다고 한다. 초창기 셔틀콕은 샴페인 마개인 코르크에 새 깃털을 꽂아서 만들었다. 라켓은 양의 창자를 말린 거트(gut)를 사용했다. 지금도 배드민턴과 테니스 라켓의 줄을 거트라고 한다.

셔틀콕은 천연(거위털콕·오리털콕·닭털콕)과 인조(플라스틱·나일론)로 나뉜다. 선수들이 사용하는 천연 셔틀콕은 거위 깃털 16개를 이어서 만든다. 거위는 양쪽에 7개씩의 깃털이 있는데 오른쪽과 왼쪽 깃털의 방향이 정반대다. 따라서 셔틀콕 한 개를 만들려면 거위 세 마리가 필요하다. 값도 만만찮아서 전문 선수들이 쓰는 제품은 12개들이 한 박스에 4만원 정도라고 한다. 16개 깃털 중 한 개라도 부러지면 셔틀콕이 날아가면서 흔들리게 돼 폐기 처분해야 한다. 배드민턴 여자 국가대표 김문희(23·대교눈높이) 선수는 “실전 같은 훈련을 하다 보면 2시간 뛰는 동안 한 사람당 한 박스 정도 셔틀콕을 쓰게 된다”고 말했다.

전국어르신 배드민턴대회에 출전한 선수들이 복식 경기를 하고 있다. [전국배드민턴연합회 제공]

요즘은 웬만한 동호인들도 거위털콕을 쓴다. 오리털콕과 닭털콕은 값이 싼 반면 내구성이 떨어진다. 요즘은 인조 셔틀콕도 많이 쓰는데 천연 셔틀콕처럼 속도가 급격히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게임 중 랠리가 오래가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배드민턴 선수들의 민첩성은 상상을 초월한다. 동물적인 움직임으로 랠리를 주고받는 장면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강하게 때린 셔틀콕이 코트에 떨어지는 데는 0.15초 정도 걸린다. 반면 인간의 반응 속도는 제아무리 뛰어난 운동신경을 갖고 있어도 0.2초를 넘는다. 그런데 어떻게 스매시를 받아낼 수 있을까. 비결은 반복 훈련이다. 선수들은 상대 움직임은 물론 눈동자 방향만 봐도 셔틀콕이 어디로 올지 알아챈다고 한다. 그래서 미리 자리를 잡고 기다린다. 김문희 선수는 “다른 종목 선수들과 비교해 봐도 배드민턴 선수들의 민첩성과 순발력이 뛰어나다. 순발력 강화 훈련을 하기도 하지만 상대와 랠리를 주고받는 것 자체가 가장 좋은 순발력 훈련이 된다”고 말했다.

“복식 경기 때 돌아보다간 다칠 수도”
국내에서 배드민턴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생활체육 종목 중 유일하게 16개 광역시·도는 물론 시·군·구 등 기초자치단체까지 생활체육배드민턴연합회가 구성돼 있다. 전국의 등록 클럽 수는 4000개를 헤아리고 등록된 동호인만 50만 명이다. 집 앞이나 공원에서 배드민턴 채를 휘두르는 사람들까지 합치면 100만 명을 훌쩍 넘어선다. 전국배드민턴연합회에서는 가족축제·여성부 등 다양한 대회를 여는데 전국대회에는 1500개 팀 이상이 출전한다.
사람이 많으니 힘도 세다. 특히 선출직 공직자들에게 이들은 ‘귀한 표밭’이다. 서울의 구 단위 클럽대회가 열리면 지역 국회의원과 구청장 등이 축사 한번 하려고 경쟁한다.

배드민턴을 아무나 할 수 있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해서는 큰코다칠 수가 있다. 운동량이 워낙 많고 격렬한 종목이기 때문이다.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다음 날 아침 경기에 출전했다 심장마비로 숨진 경우도 있었다. 셔틀콕에 맞아 다치는 사고도 가끔 일어난다. 전문 선수 출신인 이영배 전국배드민턴연합회 사무처장은 “남녀가 짝을 이뤄 경기를 할 경우 앞에 있는 여성은 뒤의 남성이 스매시를 할 때 절대 뒤를 돌아보면 안 된다. 셔틀콕이 눈 쪽으로 날아오면 크게 다칠 수 있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배드민턴 용품 시장도 급속도로 커지고 있다. 지난해 수입된 라켓과 셔틀콕의 원가만 2332만 달러(약 260억원)에 달했다(관세청 자료). 문제는 국내 업체들이 끼어들 틈이 없다는 거다. 셔틀콕은 전량 중국에서 만든 것을 수입해 쓴다. 라켓은 요넥스(일본)와 빅터(대만)가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대한스포츠용구공업협동조합 권오성 이사장(비바스포츠 대표)은 “배드민턴 용품은 수작업이 많은 노동집약형 산업이다. 80년대까지 국내 업체들이 닭털콕과 라켓을 생산했지만 중국 업체들과 인건비 경쟁을 이겨낼 수 없어 도산했다”고 말했다. 그는 “천연 셔틀콕과 품질은 비슷하면서도 기계화를 통해 대량생산이 가능한 인조 셔틀콕 개발에 힘을 모아야 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자, ‘날이 풀리면 슬슬 배드민턴이나 시작해 볼까’라고 마음먹는 분들이 있을 것 같다. 근데 너무 만만하게 덤벼선 곤란하다. 좀 괜찮다는 라켓 하나가 30만원을 훌쩍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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