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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바라크 무너지면 사우디도 흔들릴 것”…1979년 호메이니 혁명 이후 최대 격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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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이집트 시위대가 27일(현지시간) 동북부 도시 수에즈에서 경찰에게 화염병을 던지며 저항하고 있다. 시위대는 대부분 젊은 층이다. [수에즈 로이터=연합뉴스]


“무함마드 엘바라데이(Mohamed ElBaradei)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 대중의 지지를 받게 되면 호스니 무바라크(Hosni Mubarak) 이집트 대통령이 실각할 수도 있다.”

티머 쿠란(Timur Kuran·사진) 미국 듀크대 경제학과 교수는 28일 본지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최근 이집트를 뒤흔들고 있는 민주화 시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의 전망대로 무바라크 정권이 무너지면 중동은 1979년 이란 혁명 이래 최대의 격변에 휩싸일 전망이다.

쿠란 교수는 1989년 동유럽에서 민주화 혁명 도미노가 일어나기 직전, “흔들릴 것 같지 않던 국가들도 예상 밖의 혁명으로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고 주장해 국제적 주목을 받았다. 1789년 프랑스, 1917년 러시아, 1979년 이란 혁명의 공통점을 분석한 ‘불꽃과 대초원의 화재: 예상치 못한 정치적 혁명의 이론(1989년, 『퍼블릭 초이스』)’이란 글을 통해서다. 쿠란 교수와의 e-메일 인터뷰를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튀니지발 ‘재스민 혁명’이 인접 국가들로 확산될 것이라고 보나.

  “이미 아랍권 전체에서 대규모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이집트의 경우 최근 몇 년 새 가장 큰 규모의 시위가 발생했다.”

예멘 수도 사나에선 27일(현지시간) 1만6000명의 시위대가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위). 튀니지 수도 튀니스에선 총리 사무실 앞에서 시위대가 국기를 흔들며 독재 청산을 외치고 있다(가운데). 레바논에선 친서방 정권이 실각하자 구 정권 지지자들이 촛불을 들고 트리폴리 시내를 행진하고 있다(아래). [사나·튀니스·트리폴리 신화·로이터·AP=연합뉴스]

-무바라크 정권이 붕괴될 수도 있다고 보나.

“엘바라데이가 반정부 세력을 이끌고 대중들로부터 지도자로 인정받게 된다면 무바라크가 축출될 가능성이 크다. 설령 그가 거부한다고 해도 측근 그룹 이 퇴진을 요구할 것이다.”

쿠란은 1989년 동유럽 혁명의 성격을 분석한 글 ‘불가능을 벗어난 현재(1991년)’와 저서 『사적인 진실, 공적인 거짓말』(1995년)을 통해 ‘예상 못한 혁명’의 특징으로 다음 두 가지를 꼽았다.

첫째, 폭압적 정권 하에서 사람들은 탄압을 피하기 위해 ‘변화에 대한 갈망’을 숨기는 경향이 있다. 집권세력을 싫어하면서도 마치 동조하는 듯이 행동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선호 위장(preference falsification)’이라고 칭했다. 이런 경향 탓에 집권 세력은 ‘밑바닥 민심’을 읽지 못하다 결정적 순간 뒤통수를 맞게 된다는 것이다.

둘째, 자신의 목소리를 숨기고 있던 사람들은 혁명의 조건이 무르익어 선구자들이 행동에 나서면 맹렬한 기세로 그 뒤를 좇는다. 이런 상황이 되면 집권 세력 내에서 정반대 ‘선호 위장’ 경향이 나타난다. 친정부 세력조차 ‘대세’를 좇아 혁명을 지지하는 듯이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 쿠란은 이를 ‘혁명의 밴드왜건 효과(revolutionary bandwagon effect)’라고 불렀다. 밴드왜건은 미국 서부개척시대의 악대차(樂隊車)를 말한다. 요란한 음악으로 사람들을 불러모아 특정 방향으로 이끄는 역할을 했다. 경제학에선 유행에 따라 상품을 소비하는 경향을 가리킨다. 엘바라데이가 ‘대세’로 떠오를 경우 이집트 집권 세력 내부에서 무바라크 축출 움직임이 나타날 것이란 쿠란의 전망은 이 같은 이론을 근거로 한다.

-무바라크가 물러난다면 중동 정세는 어찌 되나.

“이집트는 아랍세계의 핵심 국가다. 무바라크 정권이 무너진다면 그 충격파는 전 중동을 뒤흔들 것이다. (이슬람권의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조차 불안정해질 수 있다.”

-튀니지의 민주화는 성공할까.

“축출된 벤 알리(Ben Ali) 전 대통령의 측근들이 계속 권력을 잡는다면 새로운 독재정권이 들어설 것이다. 반면 1989년 동유럽 혁명 때처럼 그의 측근 가운데 혁명 동조 세력이 나온다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집권층 가운데 이탈자가 나오면 정치 엘리트 가운데 반(反)정부 밴드왜건 현상이 일어나며 정권을 붕괴시킬 것이다. 하지만 (이집트의 엘바라데이 같은) 확실한 반정부 지도자가 없어 가능성은 낮은 편이다.”

  김한별 기자

◆티머 쿠란=미국 뉴욕에서 태어나 터키에서 자랐다. 이스탄불의 로버트 칼리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돌아와 프린스턴(학사)·스탠퍼드(석·박사)대에서 공부했다. 경제학 전공이지만 정치·역사 등의 분야를 넘나들며 연구·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듀크대 경제학과 교수 겸 고터 패밀리 이슬람 연구 교수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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