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칼럼

인터넷서 외국인 차별 없어져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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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고건
서울대 교수·한국공개소프트웨어 활성화포럼 의장

서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끝난 지 몇 달이 되어가고 있다. 세계 많은 나라들은 한국이 G20 의장국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보내고 있고 부러워하는 보도들도 있다. 21세기 들어 이제 국제화는 거스를 수 없는 역사적인 흐름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한국은 세계 각국과 자유무역협정(FTA) 조약을 맺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더구나 한국처럼 대외무역 의존도가 높은 나라는 국제화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것이 우리가 뻗어가야 할 길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 자랑스러운 것은 우리나라도 이제 정보기술(IT) 강국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G20 정상회의 때에도 우리는 IT 강국이라는 사실을 한껏 홍보하였다. 정상회의장에는 실물 3분의 2 크기의 첨성대가 1300여 장의 발광다이오드(LED) 화면을 통해 심해에서 노니는 물고기와 한자 책 모양을 보여주었다. 또 G20 회의 참가자들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모바일 인터넷 TV(IPTV), 와이브로, 갤럭시 탭 등을 통해 자국 방송을 볼 수 있었다. 회의장 테이블에도 첨단 디지털 펜을 설치해 수십m 떨어진 수행원의 컴퓨터 스크린에 직접 메모를 보낼 수 있게 만들었다. 참으로 자랑스러운 모습들이다.

 그러나 지금 정작 우리나라를 방문 중인 외국인들은 우리나라 인터넷 공간의 외국인 차별로 인해 하루하루를 얼마나 불편하고 불쾌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아는가. 우리나라는 외국인들에게 주민등록번호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우리 인터넷은 가는 데마다 주민등록번호를 꼭 요구한다. 주민등록번호 없이는 우리 인터넷에선 금융거래도, 멤버십 가입도, 구매·매표·예약·공공서비스 등 어떤 인터넷 활동도 불가능해진다. 따라서 주민등록번호를 제공받을 수 없는 외국인들은 우리나라 인터넷 공간에서는 기본 생활권을 박탈당한 것이다. 우리나라가 이처럼 외국인에게 불평등하고 배타적인 인터넷 환경을 제공하면서 어떻게 지식기반사회에서 G20 의장국, IT 강국을 자랑만 하겠는가.

 필자는 70년대 미국에서 학생비자를 받아 유학할 때에도 우리나라 주민등록번호에 해당하는 SSN(사회보장번호, Social Security Number) 번호를 받아 미국서 생활하는 데 전혀 불편함을 모르고 살았다. 우리나라도 체류 중인 외국인들이 신청할 경우 주민등록번호를 주면 안 되는가. 장기체류 외국인들에게 부여되는 외국인 등록번호도 대부분의 사이트에서는 인증을 안 해주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외국인들에게 주민등록번호를 부여하고 내국인들과 동등하게 인터넷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글로벌 시민 에티켓이 아니겠는가. 제주도 관광대국도 좋고, G20 의장국도 좋고, IT 강국도 좋고, 아시아의 허브도 좋지만 먼저 우리 생활 속에서 국제화를 저해하는 것들부터 찾아내서 시정해나가는 것이 순서가 아닌가 생각한다.

고건 서울대 교수·한국공개소프트웨어 활성화포럼 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