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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 소용돌이서 호남은 □라서 살아남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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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버스터미널 방역 지난 26일 광주시 광천동 버스종합버스터미널에서 금호고속 직원이 발판에 소독약을 뿌리고 있다. 금호고속은 전남지역의 구제역 방역을 위해 광주터미널에 소독기를 설치했으며 시·군 터미널은 지자체와 함께 방역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호남이 없으면 나라가 없다’(若無湖南 是無國家). 충무공 이순신은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1593년 호남의 중요성을 이렇게 비장하게 설명했다. 왜군은 경상·충청·강원을 유린하고 파죽지세로 한양을 함락시켰다. 전라수군절도사였던 이순신은 호남을 최후의 보루로 삼았다. 군량을 의지하는 호남을 사수하지 않으면 조선이 무너질 수밖에 없는 풍전등화의 위기였다.

 그로부터 418년이 흘러 이 말이 다시 등장했다. 이번에 싸워야 할 적은 구제역이다. 현재 호남과 제주만 구제역이 퍼지지 않았다. 호남은 1934년 이후 77년간 구제역이 발생하지 않은 청정지역이다. 제주는 섬이라는 특성이 있다. 결국 향후 구제역과의 승부는 호남을 지키느냐에 달렸다. 다른 지역도 방역에 매달렸지만 실패했다. 호남이 구제역 대재앙에 굴복하지 않은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이렇게 분석했다.

 사육환경을 개선한 게 효과를 봤다. 전남도는 2006년부터 축사에 방목장을 만들었다. 소와 돼지가 좁은 공간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전염병에도 약하다. 적정한 사육 밀도를 유지하는 등 친환경 축산을 한 게 구제역 예방에 도움이 됐다.(임영주 전남도 농림식품국장)

 따뜻한 데다 바람이 덜 분 덕도 봤다. 구제역 바이러스는 기온이 올라가면 죽는다. 호남과 제주는 한국에서 가장 따뜻한 곳이다. 구제역은 바람을 타고도 전파된다. 유럽에선 바이러스가 바람을 타고 300㎞ 떨어진 섬으로 옮겨간 적도 있다. 호남의 경우 북쪽과 동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세지 않다.(전남대 강문일 수의병리학전공 교수)

 호남은 인적·물적 교류가 적은 지역이다. 공항·KTX·고속도로 이용객이 상대적으로 적다. 광양항을 제외하고는 대규모 항만도 없어 외국으로부터 바이러스가 유입될 확률도 낮다. 분뇨 수거나 사료 공급, 도축도 대부분 호남 안에서 해결했다.(박성국 전남도 축산기술연구소 방역과장)

 발 빠른 초동 대응과 필사적 방역을 빼놓을 수 없다. 외지에서 오는 축산 차량에 대한 방역은 운전자들이 짜증낼 만큼 철두철미하다. 축산 관련 차량을 도로 한쪽으로 따로 불러내 소독을 한다. 소독을 거치지 않으면 통행증을 발급하지 않는다. 전북도에서는 2003년, 2006년, 2008년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해 큰 피해를 봤다. 이게 교훈이 됐다. 초동 대응이 결정적 변수라는 걸 과거의 쓰라린 경험으로 배웠다.(박태욱 전북도 동물방역계장)

전주=장대석, 광주=유지호 기자

◆약무호남 시무국가=임진왜란 때인 1593년 7월 16일 충무공 이순신 이 현덕승에게 보낸 편지에 쓴 말. ‘호남은 국가의 보루이며 장벽이니 만약 호남이 없다면 곧 국가가 없는 것이다’(湖南國家之保障 若無湖南 是無國家)라는 뜻이다. 『발해고』의 저자 유득공이 1795년에 편찬한 ‘이충무공전서’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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