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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통령 배심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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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불멸의 걸작 ‘12명의 성난 사람들’은 배심제의 부조리를 파헤친 영화다. 촌스럽기 그지없는 1950년대 흑백영화 같지만 늘 역대 랭킹 10위권에서 맴돈다. 친부 살해범으로 몰린 소년의 누명을 배심원 한 명의 슬기로 벗겨내는 탄탄한 플롯이 한시도 눈을 못 떼게 한다. 관객들은 편견과 무료함에 빠진 배심원들이 얼마나 무책임한지 목도하면서 진저리치게 된다. 배심제의 결함은 가히 태생적이라 할 만하다. 소크라테스에게 독배를 내린 것도 우매한 아테네 배심원들이었다. 미국의 남북전쟁 무렵엔 보안관이나 판사 멋대로 배심원들을 뽑았다. 범인의 친인척이 배심원이 되기 일쑤였고 때론 배심원으로 선정된 술주정뱅이들이 안 나타나 길거리에서 아무나 붙잡아 배심원석에 앉히기도 했다. 1995년 전처 살해 혐의로 법정에 섰던 미식축구의 전설 O. J. 심슨이 명백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무죄가 된 것도 감정에 쏠린 배심원들 탓이란 해석이 많다. 따지고 보면 공산주의식 인민재판도 선동에 휩쓸리는 배심제의 변형이다.

 그럼에도 배심제는 장구한 세월을 뚫고 지금껏 살아남았다. 한국에 이어 법관 엘리트주의가 강한 일본도 2년 전 배심제를 도입했다. 배심제가 세계의 트렌드인 셈이다. 우수한 법관 한두 명의 판단력보다 상식적인 시민들의 ‘중지(衆智)’가 더 현명하고 정의롭다는 믿음 덕이다. 지난해 일본 정계의 최고실력자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를 법정에 끌어낸 것도 시민대표로 구성된 검찰심의회였다.

 배심원을 맡는 건 성가신 일이다. 목구멍이 포도청인 판에 며칠씩 빼먹어야 한다. 오죽 귀찮았으면 배심원 의무를 져야 하는 미국 시민이 되지 않기 위해 영주권자로 남는 재미동포들까지 생겼을까.

 이런 세태 속에서 최근 미국 조셉 바이든 부통령이 배심원 선발 대상이 되자 워싱턴에서 180㎞ 떨어진 법원에 출두했다는 소식이다. 일인지하 만인지상 의 그로서는 대충 둘러대면 될 터다. 그럼에도 그는 “배심제는 사법체계의 핵심”이라며 몸소 시골 법원에 달려갔다.

 한국형 배심제인 국민참여재판이 시행 4년째다. 그러나 지난해 배심원으로 부름받은 이들의 참여율은 60%를 밑돈다. 다행한 건 배심원 경험자 중 75%가 자신이 한 일에 “만족한다”고 답했다는 거다. 25%는 “보통”이라고 했고, 불만을 표시한 이는 없었다. 배심 참여는 의무이기도 하지만 스스로에게도 썩 괜찮은 일이라는 걸 알리는 것도 좋은 홍보 전략일 듯하다.

남정호 국제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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