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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민족주의일까, 기성용의 골 뒤풀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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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이정찬
스포츠 부문 기자

25일 열린 일본과의 아시안컵 4강전에서 기성용이 보여준 골 뒤풀이는 긴 여운을 남겼다. 기성용은 전반 23분 페널티킥으로 득점한 뒤 중계 카메라를 향해 달려가 입술을 내밀고 왼손으로 얼굴을 긁었다. 기성용의 행동이 무슨 뜻인지 짐작한 축구팬들 사이에 논란이 벌어졌다. 누리꾼들 가운데 상당수가 온라인 공간에서 일본인을 지칭할 때 ‘원숭이’라는 은어를 쓴다. 많은 축구팬이 ‘인종비하’라고 비판했다.

 기성용은 경기 직후 트위터에 “관중석에 있는 욱일승천기를 보는 내 가슴은 눈물만 났다”고 썼다. 욱일승천기는 제국주의 일본의 군대가 사용한 깃발이다. 기성용은 트위터를 통해 골 뒤풀이의 뜻을 설명한 것 같다. 욱일승천기를 내건 일본 응원단을 비난하며 기성용을 두둔한 축구팬도 있었다. 하지만 비난하는 팬이 더 많았다. 기성용은 다시 “선수이기 전에 대한민국 국민입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일본 언론은 기성용을 비판했다. ‘산케이스포츠’는 27일 “ 국제축구연맹(FIFA)이 이를 인종차별 행위로 인정할 경우, 징계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본과의 경기에서 원숭이를 흉내 내는 듯한 골 뒤풀이를 하는 기성용. [중앙포토]

 FIFA에는 2006년 10월 30일 확정한 인종차별 관련 징계 규정(55조)이 있다. FIFA가 주관하는 대회에서 선수나 팀 스태프, 관중이 특정 팀 또는 선수에 대해 인종차별적 언동을 하면 해당 팀의 승점을 3점 깎고 두 번째 적발되면 승점 6점을 뺀다. 세 번째에는 아예 대회 출전을 금지한다. 처벌받은 팀이 속한 협회는 2년간 제재를 받는다. FIFA가 처벌 규정을 둔 이유는 인종차별이 스포츠맨십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용서할 수 없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기성용도 지난해 10월 세인트 존스턴과의 스코틀랜드 리그 경기에서 상대 서포터스로부터 모욕을 당했다. 그들은 ‘우~ 우~’ 하는 원숭이 소리로 동양인인 기성용을 모욕했다. 기성용의 동료인 차두리가 먼저 알고 분통을 터뜨리며 트위터에 내용을 올리자 국내 팬들이 분노했다. 기성용도 스코틀랜드에서는 인종 모욕의 피해자였던 셈이다.

 축구는 본디 인간의 본능을 자극하는 스포츠라고 한다. 국가대항전은 민족의식을 한껏 부추긴다. 기성용의 골 뒤풀이는 가슴이 뜨거운 젊은 선수가 도에 넘치게 기쁨을 표현한 사례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일본 칼럼니스트 우쓰노미야 데쓰이치가‘스포츠나비’에 쓴 ‘한·일전 후일담’이라는 칼럼은 주의해 읽어볼 만하다.

 “기성용은 훌륭한 재능을 지닌 선수다. 그는 틀림없이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로 성장할 것이다. 향후 만약 일본전에 출장해 골을 넣을 기회가 있다면 쿨한 포즈로 세리머니를 마무리하길 바란다. 일본 축구팬들에게는 그런 기성용의 모습이 훨씬 분하게 느껴질 것이다.”

이정찬 스포츠 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