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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금산, 봄은 저 바다 너머 있겠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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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금산 보리암은 남해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다. 어디가 산이고 어디가 절인지 모르겠고,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바다인지 또 모르겠다.

남해 금산을 올랐습니다. 금산 앞에는 꼭 남해라는 지역 이름이 붙습니다. 경남 남해도 안에 비쭉 솟아 있는 산이어서 틀린 말은 아니지만, 금산이라는 이름이 전국에 널린 게 아닌데 우리는 굳이 남해 금산이라고 부릅니다. 남해 금산이라고 불러야 우리는 비로소 안심을 합니다.

 남해 금산을 오르는 건, 산행이지만 산행이 아닙니다. 일종의 의식을 치르는 일입니다. 멀찌감치서 바라보기만 해도 흐뭇한 산이 있다지만, 남해 금산은 정상을 밟아야, 그러니까 날카로이 솟은 맨몸의 암봉 위에 올라서야, 암봉 위에 서서 발 아래 빛나는 시퍼런 남해바다를 내려다봐야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남해 금산은 수행하듯이 온몸으로 겪어야 하는 산입니다.

 남해 금산 정상에서 느끼는 건, 정상에 섰다는 포만감 따위가 아닙니다. 어떤 기운 같은 것입니다. 아마도 현란한 산자락 곳곳에 쟁여 있는 숱한 전설 때문일 터입니다. 미신에 무심해도 신앙과 상관 없어도 정상에 올라섰을 때 기분은 분명 다릅니다. 풍수지리에서는 산세 때문이라 하고, 과학에서는 남해 금산을 형성하고 있는 화강암의 작용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남해 금산에는 보리암이라는 암자가 있습니다. 남해 금산 정상 바로 아래가 깎아지르는 절벽인데, 그 절벽 위에 위태로이 걸려 있습니다. 보리암은, 골짜기 깊숙한 곳에 편안하게 들어앉은 여느 산중 암자와 달리 절벽 끄트머리에 엉덩이만 살짝 대고 걸터앉아 있습니다. 그 보리암을 중앙에 모시고 기기묘묘한 형상의 기암괴석이 빙 에워싸고 있습니다. 기암괴석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남쪽 방향엔 바다가 있습니다. 하여 산과 암자는 경계가 흐릿합니다. 남해 금산, 이 험한 산자락 모두가 보리암 경내일지 모릅니다.

 이 보리암에 전설이 하나 내려옵니다. 보리암에서 소원을 빌면 관음보살이 소원 하나는 꼭 들어주신다고 합니다. 한데 조건이 있습니다. 자신을 위하는 소원보다 남을 위하는 소원이어야 한다고 합니다. 사실 남해 금산은 소원 없이 올라도 좋습니다. 어느 너럭바위 위에 털썩 앉아 하염없이 바다만 내려다봐도 좋고, 해수관음상의 온화한 미소만 바라봐도 좋습니다. 시인 이성복은 떠나버린 사랑 때문에 남해 금산을 올랐습니다. 보리암에서 ‘보리’는 본래 ‘깨달음’을 가리킵니다.

 설 명절이 다음 주입니다. 운세를 점치고 소원을 비는 때입니다. 소원이 생기면 남해 금산을 오르십시오. 당신 자신의 소원이 아니라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소원을 안고 남해 금산을 오르십시오. 자동차로 주차장까지 올라가지 말고, 거친 화강암 돌계단을 두 시간 꼬박 오르십시오. 남해 금산을 오르는 건, 당신의 사랑을 확인하는 일입니다.

글·사진=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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