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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 잃은 ‘송영길식 평화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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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기환
인천·경기 취재팀장

지난해 11월 20일 낮 인천시청 앞 광장. 추운 날씨에도 ‘북한 수재민을 위한 인천쌀 보내기 시민운동본부’ 출범식이 열렸다. 지역 시민단체 등 참석자들은 ‘희망과 평화의 종이비행기’ 수천 장을 북녘 하늘을 향해 날려 보냈다. 그로부터 3일 뒤. 북한은 연평도에 무차별적인 포격을 가했다. “평화의 종이비행기가 연평도를 초토화시키는 포탄으로 되돌아 왔다”는 분노가 들끓었다.

 인천시는 지금까지 100억원의 남북협력기금을 적립해 79억원을 지원했다. 2005년에는 40억원어치의 아스팔트 피치·페인트 등을 지원해 평양 시내의 도로 모습을 바꾸어 놓았다. 2008년에는 평양 창광거리의 음식점 현대화 사업에 10억원을 보냈다.

 지난해 7월 취임한 송영길 인천시장은 더 적극적이다. 천안함 폭침에도 불구하고 ‘인도적 지원’ 명분으로 연평 포격 직전까지 8억8000만원어치의 영·유아 식량 등을 여섯 차례 보냈다. 6·2 지방선거를 통해 스타덤에 오른 송 시장은 경쟁력을 갖춘 정치인으로 꼽힌다. 선거 때 내세운 ‘황소’ 브랜드도 힘을 발휘했다.

 그러나 취임 이후 국가안보·대북 문제와 관련한 그의 행보는 지방정부의 수장으로서는 ‘균형’을 잃고 뒤뚱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송 시장은 연평도 포격 직후 트위터에 “우리 군이 북한을 자극해 포 공격을 초래했다”는 글을 올렸다. ‘자기 시민들이 희생당하고 있는데도…’, ‘인천시장이냐 평양시장이냐’ 등의 비판이 나왔다. 12월 말 인천시의회에서는 “연평 사태의 원인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책 때문”이라며 “불장난하다가 불을 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연초에는 이종석·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및 김만복 전 국정원장 등을 초청해 ‘서해 평화에 대한 고견을 듣겠습니다’라는 자리도 마련했다. 김만복씨는 이 자리에서 “인천시는 연평도 포격의 피해자로서 정부에 목소리를 낼 만하다”며 “시민단체도 안정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여야 한다”고 거들었다. 인천해병전우회 등에서는 “북한이 ‘인천은 이미 절반쯤 접수했다’고 여길 것만 같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1939년 9월 영국 총리 체임벌린은 히틀러와의 뮌헨회담 협정문을 흔들어 보이며 “이것이 평화”라고 호언했다. 체코의 수데텐란트를 넘겨주지 않으면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히틀러의 협박에 굴복한 뒤 얻은 ‘껍데기 평화’였다. 6개월도 안 돼 히틀러는 체코 전역을 병합하며 2차대전의 총성을 울렸다. 인내와 양보로 전쟁을 피할 수 있다고 믿었던 체임벌린은 히틀러 때문에 실각한 뒤 얼마 안 돼 화병으로 사망했다.

 ‘그물 던져 꽃게 잡고/소라·고둥 목걸이 만들어 노래하며/갈매기 날개바람 따라 관광객의 웃음이 넘쳐나는/평화로운 서해바다’. 송 시장의 올해 신년사 중 서해평화에 대한 꿈이다. 누구나 평화는 바란다. 하지만 이런 수사(修辭)만으로는 안 된다. 맞서야 할 때는 당당하게 맞서야 평화를 쟁취할 수 있다.

정기환 인천·경기 취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