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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 빛공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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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1910년 처음으로 맨해튼의 야간 조명을 보고 시인 에즈라 파운드는 꽤나 황홀했던 모양이다. “여기가 우리의 시(詩)다. 우리 의지대로 별들을 끌어내렸으니 말이다”라고 했을 정도다. 1943년 생텍쥐페리도 『어린 왕자』에서 유사한 비유를 한다. ‘가로등 켜는 사람’을 만난 어린 왕자가 중얼거린다. “가로등을 켜는 건 별 하나를 생기게 하는 거와 같은 거야.” 그러나 에즈라 파운드나 어린 왕자는 미처 생각 못했을 게다. 훗날 전광판과 가로등이 빚은 ‘빛공해(light pollution)’가 밤하늘을 밝히는 진짜 별빛을 몰아내는 주범이 된다는 것을. 세계 인구의 3분의 2가량은 별들이 수놓은 밤하늘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서울의 맑은 밤하늘에서 헤아릴 수 있는 별의 수는 고작 20개 남짓이라고 한다. ‘별처럼 많다’는 말을 ‘무수히 많다’는 의미로 사용하는 게 어색할 지경이다. 빛공해는 맨눈으로 별을 보는 것만 방해하는 게 아니다. 광학망원경을 쓰는 천문 관측도 어려워져 문 닫는 천문대가 생겨날 정도다. 허블이 우주팽창을 발견한 장소인 윌슨 천문대는 인근 로스앤젤레스에서 나오는 불빛으로 밤하늘이 6배나 밝아져 결국 문을 닫았다고 한다.

 ‘별 볼 수 없는’ 밤하늘 문제는 앞으로 더 심각해질 터다. 미국의 마케팅 전문가 페이스 팝콘이 『미래 생활 사전』에서 하늘을 보면서 평화로운 명상을 할 수 있는 시각적 휴식지역인 ‘밤하늘 보호지구(dark sky preserve)’의 필요성을 주장한 것도 그래서다. ‘별빛 보호지구’로 지정된 강원도 횡성군 강림면 월현리의 천문인 마을이 바로 그런 곳이다.

 빛공해가 생태계에 미치는 악영향도 크다. 인간은 수면 방해로 생활 리듬이 깨지고 유방암·전립선암 등 성인병 발병률이 높아진다. 도시의 인공 빛을 달로 착각한 철새들이 길을 잃고, 매미는 밤이 온 줄 모르고 울어댄다. 가로등 주변 코스모스는 봄·여름인데 활짝 핀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른 결과다.

 서울시가 무분별한 야간 조명을 줄이기 위한 ‘빛공해 방지 및 도시조명관례 조례’의 시행규칙을 내일 공포한다. 건물 경관 조명은 밤 11시까지만 허용되고, 가로등·공원 조명의 빛은 주택 창문 안으로까지 비치거나 산책길 밖으로 벗어나지 않아야 한단다. 문제는 이게 권고 사항일 뿐 법적 구속력은 없다는 거다. 이래서야 도심 속 별 보기는 여전히 하늘의 별 따기 아니겠나.

김남중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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