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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트롤 타워’처럼 변하는 자동차 회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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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나이토 겐지
한국닛산 대표

전통적으로 자동차회사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내연기관·변속기와 같은 기계적인 부분들이다. 예전 자동차회사들은 기계적인 기술 발전에 집중했다. 더 빠른 자동차, 더 힘 좋은 자동차와 같은 목표를 향해 경쟁을 했다. 사람을 이동시키기 위해 달리고, 정지하는 자동차의 본질적인 능력에서만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10여 년 전부터 자동차사는 내연기관의 우수성만으로 살아남을 수 없게 됐다. 자동차사가 아닌 전자회사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변모했다. 이러한 변화는 크게 두 가지 정도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첫째는 각종 제어장치의 전자화다. 브레이크·변속기·에어백 등 모든 제어장치는 전자회로에 의해 통제된다. 예전의 자동차는 기계 장치를 중심으로 약간의 전자기기가 추가된 형태였다. 지금의 자동차는 하나의 전자기기라고 일컫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두 번째는 자동차 내부 시설의 전자화다. 최근 소비자들은 자동차를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닌 삶의 주요한 공간으로 인식한다. 오디오 시스템, 좌석의 편안함, 실내 조명과 같은 내부 기능이 최근 10년간 급속하게 발전했다. 이러한 기능 덕에 자동차는 이제 거대한 전자기기가 됐다. 미국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 자동차사들이 부스를 열고 제품을 전시하는 것은 이러한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앞으로는 더욱 급격한 변화도 예상된다. 바로 친환경 차량의 보급 때문이다. 전기차는 기존의 내연기관 자동차와 비교해 작동원리와 동력만 다른 것이 아니다. 배터리·모터를 넘어 급속충전기 같은 인프라도 필요로 한다. 전기차 도입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전기차 인프라와 관련된 모든 작업을 총괄할 수 있는 주체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 역할은 배터리를 만드는 화학회사 혹은 충전기를 만드는 전기회사만의 역할로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자동차사의 역할이 확대될 수밖에 없다. 전기차 시대에서 자동차사는 ‘전자회사’를 넘어 ‘무공해 솔루션 제공업체’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닛산은 지난해 12월 전기차 리프를 미국과 일본에 출시했다. 이를 앞두고 일본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미국·영국·프랑스·포르투갈·칠레·홍콩 등 80개 이상의 중앙정부 혹은 지방정부와 협력 관계를 구축했다. 주목할 점은 자동차사와 정부 간 협력관계가 단지 전기차 보급을 위한 충전시설 확보만을 목표로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세부 내용은 상이하지만 협력관계에 대한 기본 골자를 보면 에너지 활용과 친환경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큰 그림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가장 좋은 사례는 지능형 전력망인 ‘스마트 그리드(Smart Grid)’ 도시 구축이다.

 스마트 그리드 도시에서 전기차는 주요 운송수단으로 활용된다. 충전 중인 차량과 운행 중인 차량의 정보가 실시간으로 전송된다. 운행 가능 범위와 충전소의 정보도 운전자에게 전송된다. 집과 차량을 포함한 도시 전체의 에너지 사용을 통합 관리해 에너지의 소비를 모니터하고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시범 단지로 지정된 몇몇 곳은 국가 차원의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대표 사례가 중국 장쑤(江蘇)성 양저우(揚州)시다. 한국에서도 제주시 구좌읍에서 스마트 그리드 시범단지가 운영되고 있다.

 이런 모든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선 자동차사는 자동차를 만드는 기술 이상의 능력이 필요하다. 결국 전기차 시대에서 자동차사는 에너지의 관리, 충전소 확충, 배터리 재활용까지 전체 과정에 참여할 수밖에 없다. 자동차 개발 단계부터 ‘무공해 솔루션 제공업체’가 돼야 한다. 전기차는 스마트폰이 미친 영향 못지않게 큰 파장을 일으킬 것이다. 정부와 배터리 제조사, 소비자를 포함한 전체 사회구성원을 통합하는 자동차사의 새로운 역할론에 대한 고민이 지금부터 시작돼야 한다.

나이토 겐지 한국닛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