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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의 크리에이터 ② 극작가 장유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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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뮤지컬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장유정씨에겐 22개월 된 아들이 하나 있다. “음악 좋아하는 것, 혼자 노는 것, 고집 센 것 등은 영락없이 나를 닮았다”며 “아들과 오래오래 같이 볼 만한 작품을 쓰고 싶다”고 했다. [조문규 기자]


뮤지컬 배우들이 뽑은 국내 최고의 극작가는 장유정(35)씨였다. 2005년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로 혜성같이 나타난 장씨는 극작과 연출을 넘나들며 어느새 뮤지컬계를 대표하는 스타 창작자중 한 명으로 뚜렷이 자리매김했다. 아기자기한 글맛, 탄탄한 구성력, 살아있는 에피소드, 반전의 미학 등을 주무기로 삼고 있다. 중앙일보가 뮤지컬 배우 150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장씨는 총 46표를 획득, 극작가 부문 1위에 올랐다.

 "우리끼린 관객보다 조연출이 더 무섭다고 해요. 그만큼 같이 작업하는 이들의 눈이 정확하다는 거죠. 배우들이 저를 인정했다는 거, 솔직히 웬만한 상 받은 것보다 훨씬 기쁜걸요.”

 어쩜 이리 말을 잘 할까. “1등 한 소감이 어떠냐”는 식상한 질문에 장씨는 미리 준비해 놓은 답을 내놓은 것처럼, 정확한 모범 답변에 적당히 살까지 붙였다. “글만 쓴 게 아니라 연출을 한 덕을 크게 본 거 같다”라는 겸손 버전도 살짝 내비쳤다.

 그는 극작과 연출을 겸하기 때문에 ‘장 작가’ 혹은 ‘장 연출’로 불렸다. 최근엔 ‘장 감독’이란 호칭이 하나 더 붙었다. 영화 ‘김종욱 찾기’ 덕이다. 2006년 초연돼 공연횟수 1600회, 관객 30만 명을 돌파한 히트 뮤지컬 ‘김종욱 찾기’는 지난해 말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소극장 창작 뮤지컬이 영화화가 된 건 드문 일. 게다가 뮤지컬 작가가 메가폰까지 잡은 건 전례를 찾기 힘들다.‘여자 장진’이란 말이 나오는 이유다. 영화 ‘김종욱 찾기’의 관객은 현재 110만 명을 넘었다.

 “영화 작업은 오지로 여행을 떠난 기분이었어요. 모퉁이를 돌면 뭔가 불쑥 튀어나오는 예측불허랄까. 그에 비하면 공연은 훨씬 안정적인 작업인 거죠. 앞으로요? 둘 다 하고 싶은데요.”

 2005년 데뷔 이래 장 작가는 매년 한 작품씩 해왔다. 늘 일정한 완성도를 보여왔다는 점에서 “꾸준하고 안정적이다”란 평을 받고 있다. 특히 뮤지컬 ‘김종욱 찾기’는 사흘 만에 후다닥 썼다는 얘기가 돌아 주변을 놀라게 했다.

 “요리사로 치면 재료 완벽하게 세팅한 뒤에 칼을 드는 스타일이거든요. 취재 다 하고, 캐릭터 잡고, 구성한 뒤에 글을 쓰니 빠를 수 밖에요.”

 그는 조선대 국문과를 나온 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출과로 다시 들어갔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옆집에 놀러 가도 책만 붙잡았고, 소풍을 가면 촌극을 만들곤 했단다. 극작과 연출에 소질이 다 있었던 셈이다.

 그가 쓴 뮤지컬 세 편, 즉 ‘오! 당신이 잠든 사이’ ‘김종욱 찾기’ ‘형제는 용감했다’는 모두 대박이 났다. 소재는 대부분 주변에서 찾는다. 충북 음성 꽃동네에서 봉사활동을 하다 ‘오! 당신이…’를 착안했고, 첫사랑을 앓고 ‘김종욱…’를, 안동 종갓집으로 시집간 뒤 ‘형제는…’를 각각 썼다. 그는 ‘오! 당신이…’는 엄마, ‘김종욱…’은 첫사랑, ‘형제…’는 남편 같다고 했다.

 하지만 결코 “모델이 됐던 사람이 작품을 보고도 그게 자기 얘기인 줄 몰라야 한다”고 말했다. “작품 안에 너무 빠지면 안 된다. 쓰면서 나를 하나쯤 빼놓아야 한다. 객관성이 중요하고, 작품을 본 누구든지 자신의 얘기로 받아들일 수 있게끔 보편성을 갖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극작과 연출, 둘을 병행하는 게 헷갈리진 않을까.

 “작가 머리와 연출 머리가 따로 있어요. 연출은 종이 위의 인물을 무대 위에 세우는 것이죠. 제 글이 생생하고 현장감이 있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만약 그렇다면 연출도 하기 때문일 겁니다. 물론 함께 호흡한 배우의 공을 잊을 수 없고요.”

글=최민우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장유정 주요 작품

2005년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 작·연출

2006년 뮤지컬 ‘김종욱 찾기’ 작

2007년 연극 ‘멜로 드라마’ 작·연출

2008년 뮤지컬 ‘형제는 용감했다’ 작·연출

2009년 뮤지컬 ‘금발이 너무해’ 연출

2010년 영화 ‘김종욱 찾기’ 연출

다른 극작가는 …

2위는 서재형 연출과 콤비를 이뤄 연극 작업을 많이 해온 한아름씨였다. 지난해 더 뮤지컬 어워즈와 한국 뮤지컬 대상에서 나란히 6관왕에 오르며 각광을 받은 뮤지컬 ‘영웅’의 영향이 컸다. 3위는 연극과 뮤지컬을 넘나들며 왕성하게 활동중인 중견 극작가 조광화(46)씨가 뽑혔다. 연극 ‘남자충동’, 뮤지컬 ‘천사의 발톱’ 등에서 보여지듯 조씨는 인간 본성의 근원을 거침없는 언어와 선 굵은 남성미로 풀어내 오곤 했다. 4위는 최근 연출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박인선씨. 박씨는 군대에서 축구를 한 얘기를 아기자기하게 엮어낸 ‘스페셜 레터’로 빼어난 글 솜씨를 보였다. 5위는 이주 노동자의 일상을 아름다운 서정미로 길어 올린 ‘빨래’의 작가 추민주씨가 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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