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잃어버린 국민신뢰 되찾게 한 영웅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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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홍두승
서울대 교수·사회학과

지난 21일 소말리아 인근 해역에서 우리 해군의 청해부대는 해적에 피랍되었던 삼호주얼리호와 선원 21명 전원을 무사히 구출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자칫하면 큰 인명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우리 군은 이를 평정하는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해 국민으로부터 큰 갈채를 받았다.

해적 제압은 일차적으로 해군 특수부대 요원들이 앞장서서 이룬 일이지만, 이 작전이 성공할 수 있었던 데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사람의 영웅적인 노력과 함께 우리 모두가 만들어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합참의 정확한 상황 판단과 군 최고통수권자의 적기의 결심, 그리고 평소 실전 같은 훈련을 반복적으로 해나가면서 전투기술을 최고의 수준으로 끌어올린 장병들의 노고에 다시 한번 찬사를 보낸다.

 돌이켜 보면 지난해 3월에 발생한 천안함 피격사건과 11월의 연평도 포격사건으로 인해 우리 군은 매우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육체적 피로감 때문이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잃게 된 자괴감이 군을 짓눌렀던 것이다. 국민들 눈에 비친 군의 미숙한 대응은 그동안 우리 군이 쌓아왔던 명성과 자부심에 큰 상처를 주었다.

이번 작전의 성공은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건의 아쉬운 대응에 대한 국민적 비판과 무관하지 않다. 이들 사건은 우리에게는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기회가 되었다. 두 사건에서 우리 측 피해가 적지 않았지만, 이를 통해 우리는 북한의 실체에 대해 좀 더 명확히 인식할 수 있었고, 위협대응에 대한 군의 자세도 사뭇 결연해졌다. 지금까지 북한의 도발에 대한 대응과 한반도 평화유지라는 두 축 사이에서 군의 운신의 폭은 그다지 크지 못했다. 이들 사건을 통해 군은 좀 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가능할 수 있게 된 것은 결국 국민적 지원이다. 지난해 12월 하순에 실시된 전국 성인 남녀를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에서 북한의 추가 도발 시, 전투기 포격을 포함한 자위권 행사에 대한 군 방침에 대해 대다수(87%)의 응답자가 ‘적절하다’는 의견을 표명한 바 있다. 우리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해치는 어떠한 도발도 용납할 수 없다는 여론의 결집이 나타나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이번 작전은 우리에게는 천운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성공적이었지만, 동시에 많은 과제를 남기고 있다. 테러집단과는 어떠한 협상도 없다는 교과서적 대테러전략을 고수하기엔 인질에 대한 인명피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현실적 어려움도 함께 있다. 앞으로 테러집단들이 더 강한 수단을 통해 테러행위를 지속할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 테러행위가 발생치 못하도록 예방하는 것이 최상의 대책이겠지만 이 역시 수월한 일만은 아니다. 이번 작전의 성공에 자만할 것이 아니라 차후 발생할지도 모를 유사 사건에 대한 다양한 대비책을 미리미리 준비해둬야 하리라 본다.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가정이지만 만약 이번 작전에서 선원을 포함하여 우리 측에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면 정치권과 국민의 질타가 이어졌을 것이고, 군은 다시 한번 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해졌으리라 본다. 이와 같은 위험까지도 감수하면서 군이 과감하게 작전을 전개한 용기와 기백에 큰 믿음을 보낸다.

 천안함 피격사건과 연평도 포격사건에서 우리 군의 미숙한 대응이 여론의 집중 포화를 맞았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우리 장병들은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주어진 임무에 최선을 다한 것으로 생각한다. 군이 때로는 ‘총체적 부실’로 매도되기도 했고, 군 조직의 특수성과 전문성을 도외시한 채 민간사회의 잣대로 거침없이 군사작전의 내용까지도 재단했다. 우리 군은 그렇게 허약하지 않다. 젊은 층의 국가안보관 부재에 대해 사회적 우려가 있기는 하지만 대다수의 젊은이는 국토방위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고 있고, 주어진 임무를 성공적으로 잘 수행하고 있다. 청해부대를 비롯해 이들이 바로 우리 사회의 영웅들이다.

홍두승 서울대 교수·사회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