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박태욱 대기자의 경제 패트롤

스웨덴도 포기한 ‘부유세’ 정동영은 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4면

박태욱
대기자

무상복지를 둘러싼 논란이 이제 증세논쟁으로 번지고 있다. 어떤 형태의 복지 확대를 주장하든 이 문제가 먼저 정리됐어야 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늦었지만 당연한 흐름이다.

무상 급식·의료·보육과 반값 등록금 등 이른바 ‘3+1 복지’를 내걸고 논쟁을 주도해온 민주당은 그동안 크게 두 가지 양태를 보여왔다. 한쪽은 무상복지 재원이 4대 강 등 개발사업의 축소·중지와 이른바 부자감세 철회·비과세 감면 축소·세정 개혁·세계잉여금 활용 등을 통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다른 한쪽은 ‘3+1 복지’를 그런 재원만으론 감당할 수 없으니 원안을 줄이든지 국민 동의를 전제한 증세·차입 검토 등이 필요하다고 본다. 당론으로 무상복지를 말하기 이전에 그 기반인 재원 확보에 대해 치열한 논쟁을 통한 의견 수렴이 있었어야 한다는 점에서 선후가 바뀐 느낌은 있다.

 그래도 어찌됐든 양자 간 논쟁이 이제 어느 정도 틀을 잡아가나 했을 때 민주당 정동영 최고위원이 또 다른 제안을 들고 나왔다.

우선 ‘재원 없는 복지대책은 거짓’이란 현실적 전제를 깐 다음, 비장의 재원 확보 대책을 내놨다. 전국민의 0.58%로 추정된다는 순자산 30억원 이상 개인과 1조원 이상 재벌에 부유세를 거둬 13조3000억원, 상위 10% 고소득자에 복지목적세를 부과해 10조원을 각각 확보하자는 것이다. 정 최고위원으로선 ‘부자감세 철회’를 넘어 ‘부자증세’라는 담론을 선점했다며 뿌듯해할지 모르겠다. 게다가 최상위 1% 미만, 많아야 10%까지로 과세 대상을 제한한 것은, 무상복지를 내심 반기면서도 재원 마련이 가능할까, 혹시 개인 부담이 늘지는 않을까 걱정하던 이들에게는 귀가 번쩍 뜨일 수도 있는 제안이다. 과연 그럴까.

 부채를 뺀 순자산이 일정액 이상인 개인·법인에 매기는 부유세(net wealth tax)는 사실 족보가 있는 세목이다. 스웨덴이 처음 도입한 게 101년 전 일이고 ‘한때’ 북·서유럽을 중심으로 상당한 나라가 다양한 형태의 부유세를 도입했다. 한국에서도 내가 재무부 출입기자로 있던 20년 전, 지금은 위헌 판결을 받고 폐기된 토지공개념 관련 법들과 함께 내부 검토됐던 걸 기억하고 있다. 지금도 진보정당들이 선거 때마다 단골로 내거는 공약이기도 하다.

 아무리 시장주의 자유민주국가라도 있는 사람이 더 부담하고 사회의 부가 한쪽에 지나치게 쏠리는 것을 막자는 걸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상속·증여세가 있고 소득세나 의료보험료 누진 같은 다양한 사회적 장치들을 마련한다. 이런 것들은 사회적 동의-선거로 대표되는-를 통해 조정이 가능하다.

하지만 특정 계층만을 대상으로 삼는 부유세는 전혀 다른 얘기다. 기본적으로 역차별적인 데다 기준·평가의 자의성, 미실현 소득에 대한 과세 등 위헌 소지가 다분하다. 게다가 재산 해외 도피 같은 부작용을 배제할 수 없다.

사회주의와의 체제 대결적 성격이 강했던 부유세가 소련 붕괴 이후 유럽 각국에서 잇따라 폐지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결국 복지국가의 전범(典範)이자 부유세 원조인 스웨덴마저 2007년, 연간 불과 6억~7억 달러의 세수를 위해 2000억 달러의 국부가 유출되고, 나라 제1의 갑부가 해외에 개인자산운용회사를 설립하는 현실을 방치할 수 없다며 이를 폐기했다. 이런 터에 ‘시대정신’ 운운하며 부유세를 들먹이는 건 한마디로 언어도단이다.

박태욱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