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애 중시하는 일본팬들, 카라 분열에 ‘급실망’

중앙선데이

입력

걸그룹 ‘카라(사진)’ 멤버들과 소속사의 갈등 소식으로 일본도 떠들썩했던 한 주였다. 지난해 일본에서 데뷔해 골든디스크 신인상을 수상한 후 올해 초부터 자신들의 이름을 딴 드라마 ‘우라카라(URAKARA)’에 출연하는 등 한창 기세를 올리고 있었던 터라 팬들의 충격이 컸다. 일부 미디어에서는 본래 ‘헛소동’이라는 뜻을 가진 ‘가라사와기(空<9A12>ぎ)’라는 단어를 응용해 ‘KARA사와기(카라 소동)’라는 말을 새롭게 만들어내기도 했다.

일본 미디어와 대중의 반응은 실망과 안타까움 일색이다. 석간 후지 인터넷판은 20일 “화려한 댄스 뒤에는 ‘여공애사(女工哀史·일본 산업화 시기 여공들의 비참한 생활을 묘사한 책 제목)’가 있었다”는 자극적인 표현을 사용하면서, 카라가 소속사에게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산케이스포츠는 동방신기에 이어 카라까지 일본 진출 후 소속사와의 갈등이 불거진 상황에 대해 “일본의 체계적인 시스템과 스타들에 대한 극진한 대우를 경험한 한국 아이돌들이 한국에서의 대접에 불만을 갖기 시작하는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인터넷에는 “사람을 험하게 대하는 나라 한국” “한국 연예계는 문제투성이” 등 원색적인 비난도 쏟아진다.

이렇게 차가운 반응은 이번 상황이 일본인들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개인적으로 무슨 사정이 있건 남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가치를 정면으로 훼손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로 ‘현재 방영 중인 드라마의 제작 중단’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위기에 처했고, 이는 일본인들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일본팬들이 대중스타, 특히 아이돌 그룹에게 원하는 ‘나카마력(仲間力)’에 대한 기대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나카마’는 ‘동료’나 ‘친구’로 해석되지만 동료나 친구보다는 보다 끈끈한 느낌이 강한 단어다. 속사정이야 어떻든 겉으로 드러나는 갈등은 피하려는 경향이 강한 일본인들은, 아이돌 그룹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도 멤버 개인의 독야청청 빛나는 매력보다 팀워크나 멤버들 간의 우애를 중시한다. 문화산업 월간지 닛케이 엔터테인먼트는 몇 년간 일본 문화계를 휩쓸고 있는 이런 현상을 ‘나카마력’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한국의 아이돌 팬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멤버를 비교적 명확히 지목하는 데 비해 일본 팬들은 “누구 하나가 좋은 게 아니라 함께 있는 그들이 좋다”는 대답을 하는 경우가 많다. ‘아라시(嵐)’가 일본 최고 아이돌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멤버들 간의 사이가 좋고 트러블이 없어 보인다”는 선한 이미지가 크게 작용했다. 이들은 TV 광고에서도 인기 아이돌의 카리스마를 뽐내기보다는 게임기를 갖고 함께 노는 모습, 혹은 멤버들을 집으로 초대하는 설정 등 ‘사이좋음’을 강조한다. 만화 ‘원피스’의 가장 큰 인기비결도 주인공들의 ‘동료애’였다.

‘나카마력’이라는 말이 퍼진 데는 지금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야구 스타 사이토 유키(<658E>藤佑樹)의 영향도 컸다. 올해 와세다 대학을 졸업하고 니혼햄 파이터스에 입단한 그는 대학 마지막 경기를 우승으로 이끈 후 인터뷰에서 “내게 ‘뭔가 있는 남자’라는 말을 많이 하시는데, 그 무엇이란 바로 나카마(仲間)”라는 스포츠 만화의 대사 같은 소감을 날려 팬들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정말 한류를 위협하는 건 날조투성이의 ‘혐한(嫌韓)만화’가 아니다. 이번 상황처럼 일본인들이 중요히 생각하는 가치를 무참히 깨 버리는 데서 오는, 그 깊고도 심각한 이미지 훼손이다.

이영희 misquick@joongang.co.kr


이영희씨는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일하다 현재 도쿄 게이오 대학에서 국제관계를 공부하고 있다. 대중문화에 대한 애정을 학업으로 승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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