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약은 본원, 진료는 칠곡 … 멀고 먼 칠곡경북대병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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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경북대병원’인 대구시 학정동 칠곡경북대병원. 시 외곽에 있지만 시내버스 노선이 한 개밖에 없어 환자와 가족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홍권삼 기자]


“병원이 바뀌었으면 찾아가는 방법을 제대로 알려줘야지…. 이렇게 불편해서 어떻게 병원에 다니겠어요.”

 19일 오후 대구시 북구 학정동 칠곡경북대병원(칠곡병원) 앞. 진료를 받고 나오던 마구자(70·여·수성구 만촌동)씨가 목소리를 높였다. 마씨는 이날 진료 예약 시간에 맞춰 중구 삼덕동 경북대병원을 찾았다. 하지만 병원 측은 진료 장소가 칠곡경북대병원으로 변경됐다고 했다. 마씨는 “칠곡병원으로 가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아 택시를 탈 수밖에 없었다. 환자 이송대책도 마련하지 않고 개원하니 이런 일이 생기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칠곡경북대병원을 오가는 환자와 가족들이 교통편 부족으로 불편을 겪고 있다. 지난 3일 문을 연 이 병원은 지하 3층, 지상 9층에 520 병상을 갖추고 있다. 대구경북지역 암센터·노인보건의료센터 역할을 하면서 일반 환자도 진료하는 ‘제2 경북대병원’이다. 사업비만 2000억원이 들었다.

 그러나 병원을 운행하는 시내버스 노선은 730번 하나뿐이다. 이 노선은 남구에서 시작해 칠곡병원이 종점이다. 배차 간격은 11분으로 다른 간선 버스와 같지만 운행시간은 1시간 30분으로 긴 편이다. 다른 버스로 갈아타려 해도 환승 노선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경북대병원에서 칠곡병원으로 가는 환자 중 상당수가 택시를 이용하고 있다. 경북대병원으로 예약했지만 칠곡병원에서 진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는 하루 평균 400여 명에 이른다. 의료진이 진료 장소를 옮겼기 때문이다.

 경북대병원은 이를 고려해 개원과 함께 셔틀버스를 운행했다. 25인승 버스 5대를 임차해 15∼20분 간격으로 경북대병원의 외래환자와 직원을 칠곡병원으로 수송했다. 문제가 불거진 것은 12일이다. 북구청은 차량을 임차해 환자를 태우는 것은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위반이라며 차량운행 중지 명령을 내렸다. 병원 측은 이에 따라 13일부터 병원 자체 버스로 환자를 이송했다. 이번에는 북구보건소가 제동을 걸었다. 영리목적으로 불특정 다수인을 유인하는 경우(의료법 위반)라는 것이다. 시민들은 공공의료기관이 두 차례나 법규를 어긴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주민 김모(53)씨는 “국민 세금으로 병원을 지었으면 환자의 편의를 위한 대책도 철저하게 세웠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북구보건소 박희재 예방의학담당은 “환자의 불편이 크겠지만 법규를 어긴 만큼 셔틀버스 운행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칠곡병원 정민호 총무팀장은 “수송 대상이 예약환자인 데다 버스노선도 제대로 없어 셔틀버스 운행이 불가피하다”며 “북구청에 정식으로 순환 버스운행 승인요청을 했다”고 밝혔다.

 대구시도 문제다. 경북대병원 측은 2009년 12월 공문을 보낸 데 이어 여러 차례 시내버스 노선 증설을 시에 건의했다. 하지만 시는 이를 시급하지 않은 문제로 보고 별다른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대구시 서환종 대중교통과장은 “칠곡병원까지 좀 더 빠르게 갈 수 있도록 일부 노선을 변경하는 등 시민의 불편을 덜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글, 사진=홍권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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