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타임스 “노벨평화상 받은 오바마와 수상자 감옥 보낸 후진타오의 만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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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18일(현지시간) 미국에 도착했다. 이날 저녁 백악관의 대통령 가족 식당인 ‘올드 패밀리 다이닝룸’에서 후 주석(오른쪽)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백악관 웹사이트]


19일 오전 9시(현지시간) 후진타오(胡錦濤·호금도) 중국 국가주석의 미국 방문을 환영하는 공식 행사가 백악관 남쪽 잔디광장(사우스론)에서 열렸다. 행사 시작 전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미국 대통령과 미셸 오바마(Michelle Obama) 여사가 백악관에서 나와 후 주석을 기다렸다. 후 주석은 이번 방미에 부인 류융칭(劉永淸·유영청) 여사를 동행하지 않았지만 미셸은 환영식에 참석했다. 뒤이어 후진타오 주석이 행사장에 도착했다. 리무진에서 내리는 후 주석을 오바마와 미셸 내외가 맞이했다.

18일(현지시간) 미국 메릴랜드주 앤드루스공군기지에 도착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가운데)이 영접 나온 조셉 바이든 미국 부통령(오른쪽)과 함께 공항 환영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워싱턴 신화통신·AFP=연합뉴스]

 오바마는 후 주석의 의전에 각별히 신경 쓰는 모습이었다. 자신의 손을 후 주석 등 뒤로 가볍게 안으며 행사장으로 후 주석을 안내했다. 2006년 후 주석의 미국 방문 당시 후 주석의 옷깃을 잡아끌던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모습과 대조됐다. 오바마는 이어 후 주석 연설 때도 두 손을 앞으로 모은 뒤 후 주석을 바라보며 경청하는 모습을 보였다. 환영 연설 말미에는 중국말로 “미국에 오신 걸 환영한다”고 말했다. 후 주석은 악수로 화답했다.

하지만 양 정상은 정상회담 직전까지 치열한 기싸움을 벌였다. 오바마 행정부는 중국 측을 압박했다. 로버트 기브스 전 백악관 대변인은 전날 “(중국에 수감 중인 노벨평화상 수상자) 류샤오보(劉曉波·유효파)의 석방을 바란다는 입장을 오바마가 후진타오에게 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 타임스(NYT)는 미 전략국제문제센터(CSIS)의 책임연구원인 마이클 그린의 말을 인용, “이번 정상회담은 노벨평화상 수상자(오바마)가 노벨평화상 수상자를 투옥한 사람(후진타오)을 초대해 이뤄졌다”고 평가했다.

워싱턴 라파예트 공원에서 같은 날 한 티베트계 여성이 후 주석의 사진과 함께 ‘티베트를 해방하라’는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하고 있다. [워싱턴 신화통신·AFP=연합뉴스]

 두 정상의 기싸움은 계산된 행동이라는 게 외신들의 평가다. 미국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이 2009년 1월 취임 이후 중국에 협력을 요청했다가 무시당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미국은 지난해 11월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담에서 프랑스·브라질 등의 지지를 등에 업은 중국 공세로 ‘환율 조작국’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가 경제를 살리기 위해 돈을 많이 풀었다고 공격당한 것이다. 이로 인해 미국이 요청했던 위안화 절상 문제는 흐지부지됐다.

NYT도 18일 “오바마 정부는 세계 2위 경제대국의 정상을 맞아 의전상 준비는 철저히 하되 국방·경제·인권 등 껄끄러운 부분에 대해선 미국의 원칙을 고수해 실추됐던 체면을 살리려 한다”고 분석했다. 미국 내 상황도 강경기조와 관계 있다. 내년 11월 대선을 앞두고 재집권의 동력을 찾으려면 수출을 늘려 일자리를 만들어야 하는데 중국의 협조가 절실한 사항이다.

 후 주석도 임기 중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미국 국빈 방문에 결의를 다지고 있다. 그는 19일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미국 기자 2명의 질문을 받기로 했다. 2005년 베이징을 방문한 조지 W 부시 당시 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때에 이어 6년 만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제안한 백악관 18일의 ‘올드 패밀리 다이닝룸’ 만찬을 후 주석이 받아들인 것도 눈길을 끈다. 베이징 외교 소식통은 “오바마 대통령이 이번에 작심하고 후 주석의 솔직한 생각을 듣기 위해 특별한 저녁 자리를 주도면밀하게 마련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 외교가에서는 이날의 백악관 만찬을 ‘홍문연(鴻門宴·살기 넘치는 연회를 가리키는 말)’에 비유한다. 외교 소식통은 “미국의 의도를 모를 리 없는 후 주석이 낯선 미국식 만찬 제안을 과감하게 수락한 것이 의미심장하다”며 “후 주석 미국이 제기한 각종 현안에 대해 정면 돌파할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후 주석이 부인 류 여사를 대동하지 않은 것을 두고도 그의 결의를 보여준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후 주석이 파부침주(破釜沈舟)의 비장함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란 해석이다.

  워싱턴·베이징=김정욱·장세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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