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 책 팔고남은 50만 부 운명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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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

지난해 3월 11일 입적한 법정(法頂) 스님의 책들이 대량 폐기될 처지에 놓였다. “그동안 풀어놓은 말빚을 다음 생으로 가져가지 않겠다. 내 이름으로 출판한 모든 출판물을 더는 출간하지 말아 달라”는 유언을 지키기 위해서다.

 스님의 책을 낸 출판사들과 스님의 유지를 따르는 시민모임 ‘맑고 향기롭게’는 스님의 유언에 따라 스님의 책을 2010년 말까지만 판매하기로 지난해 합의했다. 현재 팔리지 않은 남은 책을 모두 처분할 경우 50만 부가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출판 사상 최대의 폐기 소동이 예상된다.

 『산에는 꽃이 피네』(2009) 등 스님의 책을 5종 이상 펴낸 문학의숲(대표 고세규)은 지난해 12월 27일 “스님의 모든 책을 반품해 달라”는 공문을 모든 거래 서점에 보냈다. 고 대표는 “조만간 반품이 모두 완료되면 약 10만 부를 폐기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홀로 사는 즐거움』(2004) 등 스님의 책을 11종이나 펴낸 샘터(대표 김성구) 출판사는 사정이 더하다. 김 대표는 “약 20만~25만 부가 반품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 위즈덤하우스·이레 등 다른 출판사들의 수량까지 합치면 50만 부가 넘을 것이라는 게 출판 관계자들의 추산이다.

 이런 사태에는 지난해 스님의 입적 직후 ‘법정 특수’가 일어난 것과 관계 있다. 스님의 책 10여 종이 베스트셀러로 오르기도 했다. 한동안 종이 공급이 모자라 품귀현상마저 빚어졌다. 한 주에 20만 부가량의 주문을 받은 출판사도 있었다.

 하지만 같은 달 26일 발생한 천안함 사태로 서적 판매량이 급감했다. 재고가 그만큼 쌓였던 것이다. 한기호 출판문화마케팅연구소장은 “스님을 애도하는 분위기가 천안함 희생자 추모로 분위기가 변하며 도서 판매가 급격히 떨어졌다”고 말했다.

 출판사와 ‘맑고 향기롭게’는 반품 도서 인세 환불 등의 문제를 2월 28일까지 마무리하기로 합의했다. 고세규 문학의숲 대표는 “합의도 합의지만 스님 책의 절판과 폐기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샘터 측은 반품 도서를 군부대나 오지의 도서관·교도소 등에 기증하는 문제를 협의 중이다. ‘맑고 향기롭게’의 김자경 사무국장은 “기증 문제는 아직 결정된 게 없다. 현재 인도에 있는 이사장 덕현 스님이 귀국하는 대로 협의해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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