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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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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장대석
사회부문 차장

전주 한옥마을은 지난해 국내에서 크게 히트한 관광상품 중 하나다. 네티즌과 전문가들이 관광지로 추천하고 싶은 ‘10대 으뜸명소’로 뽑혔다. ‘한국관광의 별’로도 선정됐다. 또 녹색관광의 세계적 브랜드로 통하는 ‘슬로시티(Slowcity)’로 지정받았다. 이런 평가를 반영하듯 한옥마을에는 지난해에 340만 명의 관광객이 몰렸다. 외국인도 10만 명이나 된다. “대박이 터졌다”는 찬사가 나오는 이유다.

 전주시 풍남동·교동에 들어선 한옥마을은 사실 10여 년 전만 해도 구도심의 흉물로 손가락질받았다. 이곳에는 1910~30년대 지은 기와집 700~800채가 모여 있다. 도심의 한옥촌으로는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다. 이 때문에 수십 년간 보존지구로 묶여 주민들은 손을 대지 못했다. 지붕이 새도 허가 없이는 고칠 수 없었다. 이사 가려고 집을 내놔도 팔리지 않아 울며 겨자 먹기로 사는 주민들이 적지 않았다.

 90년대 후반 민원에 밀려 정부가 서울 북촌 등 한옥지구에 대한 규제를 풀었다. 전주에서도 “개발을 허용하라”는 목소리가 커졌다. 하지만 전주시의 생각은 달랐다. 역발상을 했다. 남들이 한옥을 등한시할 때 더 보존하면 관광자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옥이 지역의 보물’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전주시는 더 강한 보존책을 폈다. 주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재산권 침해”라며 100여 일간 시청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번에는 당근을 들이댔다. 한옥답게 개·보수를 하면 수천만원씩의 보조금을 약속하며 주민들을 달랬다. 시장은 시위대 앞에서 직접 마이크를 잡고 “가장 한국적인 전통문화가 살아 있는 명소를 만들겠다”며 주민 설득에 앞장섰다.

 그렇다고 한옥만으로 사람을 끌어들이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고민한 결과가 스토리였다. 입소문을 낼 수 있는 얘깃거리를 만들었다.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적 자취를 더듬을 수 있는 경기전과 오목대·향교, 후백제의 도읍지였던 견훤의 왕궁터 등 주변에 풍부하게 널려 있는 문화유적지와 결합해 스토리를 만들었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좁은 골목길과 대를 이어 살아온 사람들, 수백 년 된 은행나무들의 사연도 발굴해 줄거리를 붙였다. 전통 공연장을 만들어 관광객들이 사시사철 판소리·민요 등을 감상할 수 있게 세심히 배려했다.

 사람들이 꼬였다. 자연스럽게 ‘맛의 고장’을 상징하는 비빔밥·한정식 등 음식점이 곳곳에 들어섰다. 2~3년 전부터는 술 한 주전자에 20여 가지 푸짐한 안주상을 차려주는 인심 후한 막걸리집도 속속 둥지를 틀었다.

 이처럼 볼거리·먹을거리·체험거리가 맛깔스럽게 버무려지면서 한옥마을은 ‘전통문화체험 관광의 1번지’로 떠올랐다.

 애물단지 취급을 받던 한옥마을이 관광지로 대박을 터뜨린 비결을 들여다보면 답은 간단하다.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 향토 문화자원을 경쟁력 있는 관광상품으로 키워내는 건 지자체의 몫이고, 단체장의 비전이다.

장대석 사회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