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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니지의 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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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대개 그렇듯 독재의 끝은 파국(破局)이다. 독재자에게 해피엔딩은 있을 수 없다. 설령 권좌에서 무사히 내려온다 하더라도 역사의 단죄(斷罪)가 기다리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독재자는 어떻게든 끝까지 자리를 지키려고 발버둥 치지만 그럴수록 결말은 더욱 비참하고, 비극적이다.

 튀니지의 독재자 지네 엘아비디네 벤 알리(74) 대통령이 지난 주말 물러났다. 궁정 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한 지 23년 만이다. 좋게 말해 하야(下野)지 야반도주와 다름없다. 몰려온 빚쟁이들의 눈을 피해 한밤중에 뒷문으로 몰래 빠져나간 꼴이다. 식솔을 거느리고 급한 대로 사우디아라비아에 의탁했지만 사우디 국왕의 마음은 언제 바뀔지 모른다. 든든한 바람막이였던 프랑스는 안면을 싹 바꿨다. 입국을 불허하고, 그와 일가(一家)의 은행 계좌까지 동결했다. 남은 것은 불안하고 쓸쓸한 말년(末年)이다. 절대권력에 취해 벌인 흥겨운 파티가 이토록 허망하게 끝날 줄 누가 알았겠는가.

 팽팽한 저울추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것은 ‘마지막 지푸라기(last straw)’ 하나다. 사소해 보이는 에피소드 하나가 순식간에 역사를 바꾼다. 그러나 그것은 수많은 필연이 모인 결과지, 순간의 우연 때문이 아니다. 누적된 불만과 불신이 임계점(臨界點)을 넘는 순간, 강고(强固)해 보이던 체제도 봇물에 둑이 터지듯 맥없이 무너지고 만다. 장기간에 걸쳐 쌓인 원한과 분노, 절망과 좌절의 결정체가 어느 순간 자연 발화(發火)하듯 갑자기 폭발하는 것이다.

지네 엘아비디네 벤 알리 튀니지 대통령이 민중시위 4주일 만에 전격 사임했다. 14일 시위대가 내무부 청사 앞에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튀니스 로이터=연합]

 튀니지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것은 꿈을 잃은 한 청년의 죽음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일자리를 못 구해 과일 노점상을 하던 무함마드 부아지지(26)는 당국의 무차별 단속에 대한 항의 표시로 자신의 몸을 불살랐다. 그로부터 정확하게 4주 만에 벤 알리 정권은 거짓말처럼 무너졌다. 이름 없는 청년의 분신(焚身)에서 촉발된 시민들의 평화적 시위에 경찰은 유혈진압으로 맞섰고, 이는 그동안 쌓인 분노를 한꺼번에 터뜨리는 기폭제가 됐다. 치솟는 물가와 높은 실업률, 갈수록 커지는 빈부격차, 특권층의 만연한 부패, 인권 유린적인 폭압정치, 장기독재에 대한 국민의 불만을 조금이라도 헤아려 미리 분출구를 열어 줬더라면 그토록 허무하게 정권이 붕괴되진 않았을 것이다. 뒤늦게 민심 수습책을 발표했지만, 타이밍을 놓친 유화책은 패배를 자인하는 항복문서일 뿐이다.

 영원할 것 같았던 독재자의 갑작스러운 유고(有故)로 1979년 10월 26일, 서울은 준비 없는 봄을 맞았다. 그때의 기대와 우려, 희망과 불안이 뒤섞인 혼란스러운 분위기가 튀니지를 지배하고 있다. 조기에 혼란을 수습해 민주화의 길로 들어설 수도 있지만 새로운 독재자에게 붉은 카펫을 깔아 주는 허망한 결과로 끝날 수도 있다. 이번 사태에서 확인된 대로 튀니지는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알자지라 위성방송이 위력을 발휘하는 열린 사회다. 전체 인구의 65%가 25세 미만이고, 고졸자의 60%가 대학을 갈 정도로 역동적인 고학력 사회이기도 하다. 프랑스 지배에서 독립한 56년 이후 일관되게 추진해 온 서구식 세속주의 정책 덕분에 이슬람 국가이면서도 이슬람 원리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미래를 낙관할 수만은 없다. 벤 알리 체제가 곳곳에 남겨 놓은 부(負)의 유산을 청산하고, 과거와 화해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결과와 관계없이 ‘튀니지의 봄’은 이미 아랍권 전체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인접한 알제리와 모로코·리비아 등 북아프리카의 마그레브 국가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이집트에서 수단, 시리아에서 요르단, 예멘에서 사우디까지 모든 아랍국 지도자들이 놀란 가슴으로 튀니지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튀니지와 흡사한 분신자살 사건이 잇따라 발생한 알제리가 당장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제2의 벤 알리’가 되지 않기 위해 벌써 각국 지도자들이 선제적인 민심 수습에 나서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변화다.

 21세기에도 아랍권은 민주화의 예외지대로 존재해 왔다. 탈(脫)냉전을 전후해 라틴아메리카와 동아시아·동유럽은 물론이고, 일부 아프리카 국가까지 민주화 대열에 합류했지만 아랍권만은 흐름에서 비켜나 있었다. 이슬람에 대한 문화적 편견도 작용했다. 아랍권의 민주화는 어렵다는 것이 서구의 지배적 인식이었다. 석유 자원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 이슬람 극단주의의 득세는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서구의 강박증은 아랍권의 전제정치에 눈을 감는 배경이 됐다. 아랍의 독재자들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을 근절한다는 핑계로 정치적 반대세력을 철저히 탄압했다. 아랍권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깨뜨린 것은 튀니지 시민혁명의 최대 성과다.

 아랍권의 민주화가 실현된다면 이는 중동 질서를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세기의 대사건’이 될 것이다. 시민사회가 뿌리내리고, 민주주의 정치원리가 작동한다면 중동의 정치·경제질서에는 혁명적 변화가 불가피하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서 이란 핵 문제, 중동의 석유 자원 배분, 미국 및 유럽과의 관계 등 모든 것이 바뀔 수 있다. 그 파장은 비단 중동에 한정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오랜 시간이 필요한 문제다. 튀니지에서 불기 시작한 민주화의 봄바람으로 이미 변화는 시작됐다. 그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지켜보는 것은 2011년 국제사회의 최대 관심사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