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만물은 하나, 사소한 징조에도 우주 메시지 담겨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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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연금술사』의 영문판과 130만 부가 판매된 국문판(문학동네 출간)의 표지.

“한 번 일어난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두 번 일어난 일은 틀림없이 세 번째로 일어난다.” 파울루 코엘류의 『연금술사』에 나오는 아랍 속담이다.
청소년 시절 코엘류는 세 차례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돼 전기충격 치료까지 받았다. 일탈 행동을 일삼으며 반항하는 코엘류가 ‘미쳤다’고 생각한 부모가 그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킨 것이다. 방황의 뿌리에는 인생 진로를 둘러싼 갈등이 있었다. 코엘류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중산층 가톨릭 집안에서 출생했다. 부모는 코엘류가 아버지처럼 엔지니어가 되거나 법률가가 되기를 바랐으나 그는 어려서부터 작가가 되는 게 꿈이었다.

작가가 되기까지 코엘류가 걸어 간 삶의 우회로(路)는 험했다. 그는 연극 감독, 잘나가는 작사가로 활동하며 한때 히피처럼 살았다. 1970년대 초반은 ‘섹스·마약·로큰롤’으로 지새웠다. 점성술을 공부하는가 하면 반정부 만화 출간으로 브라질 군부의 미움을 사고 세 차례 투옥되기도 했다.

작품 29권, 전 세계 판매 1억5000만 부
코엘류가 네 번째로 정신병원이나 감옥에 갇히는 일은 없었다. 그는 작가가 됐다. 한 번, 두 번, 세 번…. 작품을 내놓기만 하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탄생했다. 코엘류가 저술한 책 29권은 모두 합쳐 1억5000만 부가 팔렸다. 71개국어로 번역돼 6500만 부가 팔린 『연금술사』는 생존 작가 작품 중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된 작품이라는 기네스북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코엘류는 모든 이야기의 줄거리를 네 가지로 범주화한다. 모든 이야기는 두 사람의 러브스토리, 세 사람의 러브스토리, 권력투쟁, 여정(旅程) 이야기 중 하나다. 천일야화의 14번째 이야기인 ‘꿈 덕분에 다시 부자가 된 몰락한 남자’에서 영감을 얻은 『연금술사』는 여정 이야기이자 두 사람의 러브스토리다.

코엘류는 인생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인생은 기적의 연속이다. 인생의 기적은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통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중앙포토]

『연금술사』의 주인공인 산티아고(야고버)는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에 사는 양치기 청년이다. 산티아고는 이집트 피라미드가 나오는 같은 꿈을 두 번 꾸고 그 꿈에서 보물이라는 현실의 꿈을 발견한다. 길고 험한 여정 끝에 산티아고는 꿈과 사랑을 이룬다.

『연금술사』의 메시지는 사람마다 ‘개인 전설(Lenda Pessoal, Personal Legend)’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 전설’은 운명이자 소명(vocation)이다. ‘개인 전설’은 삶 속에서 꿈과 소망을 추구하는 데서 구체화된다.

꿈만 없는 게 아니라 아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무(無)개념인 경우도 많다. 코엘류는 『연금술사』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아이디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작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이 없으면서 말이다.”

코엘류는 꿈으로부터 멀어지는 이유를 네 가지로 정리한다. ①꿈이 불가능하다고 믿는 것 ②꿈을 이룰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③실패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④꿈이 실현되더라도 원래의 삶이 흔들리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연금술사』는 사람들이 꿈에 ‘반대하는’ 이유를 하나하나 걷어낸다. 그 작업의 선봉에는 『연금술사』의 중심 철학이 있다. 중심철학은 살렘의 왕 멜키세덱의 입을 통해 이렇게 선언된다. “여러분에게 소망이 있을 때, 온 우주가 몰래 힘을 모아 여러분이 소망을 이루도록 돕는다.”

중심 철학에 따른다면 우선 소망이 있어야 한다. 소망은 어떻게 세울까. 우리의 마음에 경청하면 된다. “마음이 있는 곳에 보물이 있다”고 코엘류는 말한다.

우리의 마음을 믿을 수 있을까. “그렇다”고 코엘류는 답한다. “당신이 누구건, 무슨 일을 하건, 뭔가를 정말로 원한다면 그 바람은 우주의 영혼으로부터 온 것이다.” 이 사실을 코엘류는 “지구에서 가장 위대한 진리”라고 부른다.

“숙명이 삶 지배”는 최대 거짓말
온 우주가 돕는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코엘류는 말한다. “징조(omen)를 따라라.” “우연이라는 것은 없다.”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아무리 사소한 일에도 우주가 우리에게 보내는 협력의 메시지가 있다는 것이다.

사소한 징조에 우주의 메시지가 담긴 이유는 무엇일까. “모든 사물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를 아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코엘류는 이렇게 과장한다. “모든 사물이 하나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광물과 식물밖에 없다.”

꿈을 세워 ‘개인 전설’을 사는 사람에게는 징조가 나타날 뿐만 아니라 그가 ‘호의성의 원칙(principle of favorability)’이라고 부르는 ‘초심자의 행운(beginner’s luck)’이 따른다.
초심자의 행운까지 얻게 되더라도 “결국 실패하지 않을까”하는 의심이 생길 수 있다. 더군다나 만약 과거·현재·미래를 모두 미리 정해 놓은 신(神)이 있다면 결과는 이미 정해진 게 아닌가. 결과가 실패로 정해져 있다면?

코엘류는 자신 있게 대답한다. “숙명이 우리 삶을 지배한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큰 거짓말이다.” 신이 미래를 계시한 경우에도 희망이 있다. 코엘류는 이렇게 주장한다. “신이 미래를 계시하는 일은 흔치 않다. 그렇게 하는 경우, 딱 한가지 이유가 있다. 신이 계시한 미래는 바꾸기 위해 쓰여진 미래다.”

‘개인 전설’에는 마지막 관문, 마지막 시련이 있을 수 있다. 이에 대해 코엘류는 말한다. “꿈이 실현되기 전에 우주의 영혼은 꿈을 추구한 사람이 그동안 배운 모든 것을 시험한다.” “모든 모색은 초심자의 행운으로 시작되고, 승리할 사람을 혹독하게 시험하는 것으로 끝난다.”

우리는 모두 연금술사가 될 수 있다. 코엘류가 말하는 연금술은 “우주의 영혼을 꿰뚫어 각자에게 예약된 보물을 발견하는 것이다.”

‘개인 전설’을 추구하지 않는 삶을 살면 어떻게 될까. 코엘류의 답은 ‘협박’에 가깝다. ‘개인 전설’이라는 기회는 축복이다. 코엘류는 “축복을 무시하면 저주가 된다”고 경고한다.

사이 나쁜 이스라엘·이란에도 독자 많아
코엘류는 “성공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주장하지만 『연금술사』의 출판 기록은 코엘류의 성공 비결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연금술사』의 초판은 불과 900부를 찍었다. 『연금술사』가 성공하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는 출판인도 많았다. 그러나 입소문을 통해 알려지면서 프랑스에서 시작된 돌풍이 전 세계로 확산됐다.

코엘류는 소설 한 편을 단 몇 주 만에 쓴다. 『연금술사』도 딱 2주 걸렸다. 그럼에도 코엘류가 2년에 한 번꼴로 신작을 내놓는 이유는 시장에서 자신의 신작들이 ‘동족상잔’을 벌이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코엘류의 작품들은 비평가들에겐 혹독한 비평의 대상이다. 코엘류를 사기꾼 취급하는 비평가도 많다. 배우 줄리아 로버츠는 “코엘류의 글은 너무나 아름다운 음악과 같다”고 했는데 이에 대해 브라질 문단에는 “포르투갈어에서 영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문체가 좋아지는 모양이다”고 비아냥거리는 비평가들도 있다.

코엘류의 성공 비결에는 그의 소설에 ‘모든 사람의 관심사(everybody’s business)’를 충족시키는 뭔가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가 만족시키는 ‘모든 사람의 관심사’에는 영성(靈性·spirituality)의 문제가 있다. 코엘류는 종교는 달라도 영성은 일치한다고 본다. 『연금술사』는 일상적인 삶 속에서 영성 체험을 가능하게 하는 길을 제시한다. 그의 독자층은 서로 앙숙인 이스라엘에도 있고 이란에도 있다. 그의 소설은 이란에서 600만 부 이상 판매됐다.

코엘류는 스스로를 ‘신앙 회복 중인 가톨릭 신자(recovering Catholic)’라고 정의한다. 그는 86년 스페인에 있는 ‘성 야고버의 길’을 성지 순례한 이후부터 신앙을 복원하고 있다. 매일 아침 6시 성모 마리아에게 기도하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하고 92년부터 새해는 1858년 성모 발현이 있었다는 프랑스 루르드에서 맞이한다. 그러나 그는 다소곳한 신자는 아니다. 코엘류는 교황의 사회적·정치적 입장에 대해 이견을 가지고 있으며 “하느님의 여성성(女性性·feminity)을 인지해야 한다. 하느님은 어머니다”라는 ‘위험한’ 주장도 서슴지 않는다.

미디어가 문명충돌이라는 허구를 만들었다고 비판하는 코엘류는 인류가 근본주의와 관용의 갈림길에 섰다고 주장한다. 수억에 달하는 코엘류의 독자들은 그와 마찬가지로 문명충돌 없는 관용의 길에 동참하고 있다.

김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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