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머리 여가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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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카카오 밭에 있는 카바나 속에서 살겠소”, “카카오 밭에 있는 카카오 나무에는 낙화생 열매가 매치지 않고 카카오가 열려요.”, “생쥐엔 눈썹이 있는데 눈썹에는 생쥐가 없답니다.”, “내 슬리퍼에 손을 대지 마세요!”, “슬리퍼를 움직이면 안돼! 스미스씨 파리에 손대지 말라 파리.”, “파리 날려라”

무슨말인가?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도대체 무슨 말장난을 하고 있는지 하는 의문이 들 대화이다. 그러나 현재 대학로에서 열리고 있는 연극 '대머리 여가수'의 일부분이다. '대머리 여가수'는 외젠느 이오네스코(Eugene Ionesco)의 대표적인 부조리극이다.

부조리 연극은 사람들의 근거없는 집단적인 믿음앞에 그들이 믿으려 하지 않는 현실을 제시하는 것이다. 즉 현실로 착각할 만한 사건을 꾸며 논리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인정하기 싫어하는 현실의 부조리한 모습을 보여준다.

'대머리 여가수'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혼동에 빠진다. 우리가 흔히 동문서답이라고 표현하듯 전혀 연결되지 않는 배우들의 대사는 다소 웃기는 듯하다 도를 지나친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이내 과연 우리가 믿어왔던 현실이 과연 현실인가 하는 의문에 빠져든다.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 말로서 규정하는 현실이 과연 진정한 현실인가 하는 회의에 빠지게 한다.

우리는 흔히 언어가 가장 합리적인 의사소통의 수단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부조리극은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가 비논리적이고 불합리한 것이라고 믿는다. '대머리 여가수'는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의 불가능을 강조한다.

부조리극이 처음 공연되었던 1950년대 당시의 관객들도 온갖 비평과 비난을 했을만큼 쉽게 이해하기 힘든 연극임에는 틀림없다. 또한 부조리극은 관객에게 결론을 제시하지 않는다. 결론은 철저히 관객들의 몫이다.

현재 대학로에서 극단 몸의 '대머리 여가수'는 이오네스크의 원작에 충실한 작품이다. 여기에 이화진, 김태리, 최근창등 10명의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은 극의 목적을 잘 살려주고 있다. 20여명의 관객앞에서 열정적으로 연기하는 배우들의 모습은 극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사색의 계절이라는 가을에 한번 가볼만한 공연이다

부조리극

1950년대 프랑스에서 일어난 전위극.
인간이 어떤 목적을 찾고 자신의 운명을 통제하려는 몸부림이 결국은 헛된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절망, 혼돈, 불안에 내맡겨진 존재에 불과하다고 보는 일련의 연극을 말한다. 부조리극은 초현실주의자와 실존주의자, 표현주의 및 카프카의 영향을 받아 등장인물이 아무리 혼신의 연기를 하여도 그들의 실존을 변화시킬 수 없음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부조리극의 언어는 뒤죽박죽되어 있으며 말장난, 상투어, 반복어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대표적인 부조리극으로는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이오네스크의 '대머리 여가수'등이 있으며, 출현 당시 연극계의 신선한 충격을 불러일으켰으나, 60년대 이후 실험적인 시도들이 연극의 본류속으로 흡수됨에 따라 점차 쇠퇴하였다.

이오네스크

외젠느 이오네스크(Eugene Ionesco, 1912-94)는 프랑스 반연극의 대표적인 극작가이다. 르마니아에서 태어났으며 부쿠레슈티 대학을 졸업하였다. 1938년 프랑스로 이주하여 극작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는 1950년부터 현대 연극에 대한 실험을 거듭하여 많은 작품을 남겼다.

주로 실존의 문제를 포함하여, 불가능하고 비현실적인 소재를 다룬 그의 연극은 초창기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했다. 명쾌한 결말을 바라는 관객들에게 그의 극은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대중에게 지속적으로 공연을 선 보임으로써, 자신이 가진 독창적인 스타일을 알렸다.

이오네스크는 영어공부를 위해 책을 읽다가 메모해 두었던 글들이 생명이 없는 죽은 말들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극작가의 길을 들어섰다. 극작가로서 초기에 이오네스크가 집착했던 문제들은 인간 언어의 부조리함이었다. 지극히 합리적이라고 믿는 인간의 언어가 사실은 대단히 비합리적이고 오해를 불러 일으킨다는 것이다. 대표작인 '대머리 여가수'나 '수업', '의자'등은 그런 생각에 바탕을 둔 작품들이다. 이오네스크의 초기 작품들이 인정을 받게 되는 것은 '꼬불소'가 성공을 거두어 극작가로서 그의 위치가 확고해진 뒤이다.

이오네스트는 언어의 부조리함 만큼 죽음 역시 부조리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인간이 도대체 왜 죽는 것인지, 삶의 끝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에 대해 그의 후기 작품들인 '살인자', '꼬불소', '공중보행자', '왕은 죽어가다' 등에서 다루고 있다.

이오네스크는 1994년에 작고하였다. 1972년에 무대에 오른 '막베드'가 그의 마지막 작품이다. 이제 부조리극은 하나의 고전이 되었으며 전위라는 표현이 어울이지 않는 분야가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여전히 부조리극은 무대에 자주 오르는 연극의 한 분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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