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군 출신 90세 광복회원 석근영씨 “한국사 필수 당연” 강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4면

영하 11도를 기록한 지난 12일. 석근영(90·사진) 할아버지는 서울 서초동 교대역 인근에서 가두 시위를 벌였다.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자손들이 국가의 재산 환수 조치를 취소해 달라며 제기한 소송과 관련한 재판이 열리는 날이면 할아버지는 어김없이 이곳에 나온다. 일주일에서 열흘에 한 번꼴이다. 지난해 11월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분류된 이해승의 손자가 재산 환수 조치가 부당하다며 낸 소송에서 대법원이 이씨의 손을 들어줬다. 그 뒤 관련 소송이 줄을 이었다. 29건에 달한다. 할아버지가 거리로 나선 것도 그때부터다.

 “부끄러운 역사든, 자랑스러운 역사든 우리 역사를 젊은이들이 알아야 해요.”

 15일 서울 합정동 광복회 서울지부 사무실에서 만난 할아버지는 추위 속에서도 시위를 계속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가 역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엔 이유가 있다. 할아버지는 광복군 출신의 독립운동가다.

 “우리 손자·손녀만 해도 영어공부만 했지 역사엔 도통 관심이 없어요. 외국 나가서 공부한다고 하는데, 아무리 잘나도 나라 없으면 소용없어요.” 그 역시 젊은 시절 일본 주오대(中央大)에서 3년간 법학을 공부했다. 그러다 일본군으로 징집됐다. “나라 잃은 우리 민족을 도우려고 공부했는데 내 나라 사람 괴롭히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라는 거예요.”

 허무감에 사로잡혔다고 한다. 그는 만주에 배치됐다. 일본군은 대학생인 그에게 장교가 될 것을 강요했다. 징집된 한국 청년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일을 할 수 없었다. 탈영을 감행했다. 일본군이 뒤쫓아오며 총을 쐈다. 함께 탈영한 동료가 총에 맞아 죽었다. 싸늘하게 식은 동료를 남의 땅에 묻으면서 그는 하염없이 울었다. “그때 알았어요. 나라 잃은 설움, 역사 없는 설움을 말입니다.”

 독립군에 합류한 건 그래서였다. 1944년 입대 후 중앙군관학교를 거쳐 임시정부 선전부에서 일했다. 그는 “독립운동에 참여한 길지 않은 기간 동안 목숨을 잃은 동료, 가족을 잃은 동료를 숱하게 봤다”며 “그분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없는데 요즘 사람들은 그걸 모른다”고 했다.

 그는 10여 년 전부터 광복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광복회는 신년 활동으로 ‘국사 필수과목 채택을 위한 캠페인’을 준비 중이다. 2008년부터는 서울시교육청과 함께 중학교 역사교사들을 위한 직무 연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석 할아버지는 “중앙일보에서 ‘한국사를 필수과목으로 하자’는 신년기획을 한 것은 고마운 일이면서 동시에 당연한 일”이라며 “미국이나 영국 등 선진국은 모두 국사를 필수과목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내가 아흔이야, 광복회원 평균 연령은 75세고. 우리는 곧 죽어요. 그러고 나면 또 역사 없는 나라가 될까 걱정이죠. 역사를 모르면 과거도, 미래도 잃어버리는 겁니다.”

 인터뷰 내내 흐트러짐 없이 꼿꼿이 앉아 있던 아흔의 할아버지가 말했다.

정선언·이지상 기자 do@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