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홀로’의 고독한 소통, 트위터와 페이스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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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는 여친과 대화가 전혀 되지 않는다. 끊임없이 자신의 이야기만 쏟아내고, 상대방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는 소통장애인에게 절망해 어여쁜 여친은 떠나 버린다. 홧김에 기숙사에 돌아와 만들기 시작한 것이 페이스매시. 캠퍼스 여학생들의 사진을 놓고 누가 예쁜가를 투표하는 소셜 사이트로 페이스북 혁명의 시발점이다. 컴퓨터 천재이지만 사람과의 소통에서는 낙제점을 받은, 그러나 2010년 타임스가 뽑은 올해의 인물이자 세계 최연소 억만장자인, 저커버그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소셜네트워크’는 이렇게 시작한다.

바야흐로 소셜네트워크의 시대가 도래했다. 사람 간의 관계를 기반으로 전 세계 6억 명의 유저를 단숨에 빨아들인 페이스북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웹의 새로운 지존으로 등극시켰다. 웹2.0 혁명의 총아였던 구글의 트래픽을 지난해 이미 능가한 페이스북은 개인의 신상정보에서 출발해 거대한 오픈 네트워크를 구축한 것이다.

특히 오픈 플랫폼 전략으로 수많은 제3의 기업이 페이스북 기반의 새로운 서비스들을 구현하게 한 것과, 모바일 환경에 적합한 플랫폼을 앞서 개발한 것이 주효했다는 평이다. 비록 저커버그 자신은 가까운 지인들과 소송에 휘말릴 정도로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지만, 대중이 어떤 소통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개방·참여·공유의 웹2.0식 일반적 정서에 더해 관계성과 연결성을 한층 더 증폭시킨 것이다. 결과적으로 정보의 생산·유통, 그리고 소비가 관계와 연결망에 의해 결정되는 세상이 온 것이다.

소셜네트워크 시대의 또 다른 스타는 트위터다. 140자 이내의 짧은 구문으로 의견을 피력하면, 팔로어들의 스마트폰으로 메시지가 일시에 전달되고 응답도 받을 수 있다. 수많은 관계망을 타고 언제 어디서나 실시간으로 확산되는 트윗(지저귐)들의 모바일 의사소통이 강세인 우리나라에서는 여론 형성에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지난해 6월 지방선거 때는 ‘인증샷’을 통해 민주당에 표를 몰아주었고, 최근엔 ‘통큰’ 논쟁의 터전으로 동네 치킨집들의 이익을 대변한 바 있다. 트위터는 정치인과 연예인들 사이에서 팬과의 소통 도구로 각광을 받고 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의 핵심 기술은 비슷한 사람들을 끼리끼리 묶어 주는 네트워크 기술이다. 그렇다면, 소셜네트워크는 ‘진짜 소통’을 만들어주고 있는가. 조사에 의하면 트위터는 상위 10%의 사용자가 전체 메시지의 90% 이상을 작성한다고 한다. 풀뿌리 민주주의라기보다 여론의 쏠림현상이라 봐야 할 것이다. 페이스북은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 간의 관계망에서 대부분의 정보가 생산돼 소비되게 한다. 정보 편식 현상이 심해지고, 기존의 편견이나 선입견이 고착되기 쉽다. 천안함 정국을 보라. 객관적 사실의 존재 자체를 믿지 않고, 감정에 쏠려 우왕좌왕하며, 포퓰리즘이 번성하는, 그리고 그것을 참여·공유·개방이라고 믿는 사회에는 소셜네트워크라는 관계망이 한몫을 하고 있다. 미네르바가 활개치고 타블로는 절망하는 사이버 공화국의 현실인 것이다.

소셜네트워크 혁명은 우리를 행복하게 할까. 페이스북과 트위터는 어떤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가. 멀리 있는 사람과 이음새 없는 연결을 보장해 주지만, 정작 가까이 있는 사람과는 오히려 소통의 단절을 가져오고 있진 않은가. 언제부터인가 가족의 식탁에서 자녀들은 휴대전화 화면과의 대화에만 푹 빠져 있다. 지하철에 ‘막말녀’가 출현해도 아무도 말리지 않고 오직 카메라를 들이대며 촬영에 열중한다. 모두 디지털처럼 넓고 얇은 자아를 펼치며 새로운 흥밋거리를 찾아 끊임없이 부유할 뿐이다. 실리콘처럼 드라이한 인간관계는 소통에 대한 갈증을 낳고, 마음이 통할 수만 있다면 ‘과잉 공유’라든가 프라이버시는 별 문제 되지 않는다.

소셜네트워크 산업의 폭발적 성장은 역설적으로 현대인의 소통 부재를 웅변하고 있지 않은가.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발달은 ‘함께 홀로 있는’ 개인을 양산하고, 또 다른 소외와 단절을 잉태하고 있다. 저마다 쉬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포스팅하고 관심을 끌려고 하지만, 뭔가 공허하고 고독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허전함과 무료함을 달래려고 또 다른 포스팅을 한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스쳐가는 바람도, 따스한 햇빛도, 지나가는 사람의 친절한 눈빛도 모르고 지나친다. 영화 ‘소셜네트워크’에서 저커버그가 자아만으로 꽉 찬, 불통의 인간으로 그려진 것처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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