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옥, 언제나 끝날까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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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호 11면

김만묵씨가 14일 오후 경북 안동시 와룡면 주계동에 있는 자신의 텅 빈 우사를 바라보고 있다. 지난해 12월 6일 124마리의 소를 모두 살처분한 뒤 우사 쪽을 쳐다보지 못했다는 김씨는 “억울해서라도 다시 일어설 것”이라고 말했다. 안동=임현욱 기자

14일 오후 경북 안동시 와룡면 주계동의 우사(牛舍) 앞에 선 김만묵(46)씨가 담배를 물었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124마리의 소가 시끄럽게 울던 1322㎡(약 400평) 규모의 우사에는 볏짚과 하얀 석회가루만 남아 있다. 정적만 흐른다.

소 124마리 살처분, 안동시 와룡면 김만묵씨

1m80㎝가 넘는 건장한 체구의 김씨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수염이 거칠게 자랐고 눈은 붉게 충혈됐다. 살처분하고 한 달이 넘었지만 그는 악몽에 시달린다. “잠을 잘 수가 없어요. 자더라도 30분마다 깨고요. 눈만 감으면 소 울음소리가 들려요. 멍하니 앉아 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을 주르르 흘리기도 하고 소화가 안 돼 밥도 몇 숟가락 뜨지 못해요.”

안동이 고향인 김씨는 10년 전 소 20마리로 농장을 시작했다. 다른 농장에서 8년간 일해 모은 돈으로 독립했다. 매일 오전 6시부터 소에게 사료를 주고 우사를 청소·수리하다 보면 하루가 짧았다. 매주 수요일 소독도 하고 하루에 세 번씩 물통을 씻으면서 위생관리를 철저히 했다. 중학교·고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과 보험설계사로 일하는 아내의 직장 때문에 안동시내에 집을 구했지만 자신은 시내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우사 옆 작은 컨테이너에서 지냈다. 집에는 한 달에 한두 번 들어가는 게 전부였다. 4년 전 맹장 수술을 받고도 다음날 배를 움켜 잡고 나와 소를 돌봤다. “아내가 보험설계사를 하면서 번 돈으로 생활비 하고 우사에서 나오는 돈은 재투자한 덕분에 소가 많이 불었죠.” 그는 올 설 대목에 맞춰 830㎏ 정도 나가는 소 40마리(마리당 700만~800만원)를 팔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제 돌볼 소도 없고 내다팔 소도 없다.

지난해 12월 초 김씨의 우사에서 370m 떨어진 곳에서 소 80마리를 키우는 친구 김범중(46)씨가 전화를 걸어 “소가 이상하다”고 말했다. 달려 가보니 소의 발 갈라진 곳이 노랗고 코 주변에 물집이 잡혀 있었다. 곧바로 안동시에 신고했고 다음 날 구제역 판정을 받았다. 김만묵씨의 소는 음성으로 나왔다.

친구의 소가 구제역 확진을 받은 순간 김씨는 다리가 풀렸다고 했다. 그는 “TV에서 구제역 뉴스를 보면서 친구랑 약속했어요. ‘너랑 나는 어차피 500m 안에 있으니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산다. 어떤 일이 있어도 서로 원망하지 말자’고요. 친구 녀석도 구제역 걸리고 싶어서 걸렸겠어요? 주변에 보면 구제역 때문에 이웃 간에 헐뜯고 싸우고 사이가 멀어진 곳이 많아요. 너무 안타깝죠”라고 말했다.

구제역 확진 4일 후 시청·농협 직원과 수의사가 살처분을 진행했다. 주사로 한 마리씩 소를 죽이면 포클레인이 집게로 소를 들어 트럭에 실은 후 우사에서 500m 떨어진 야산에 묻었다. 한 달이 지났는데도 매장지 주변은 썩은 냄새가 진동했다. 주변에는 하얗게 굳은 소 지방 덩어리가 널려 있었다. 소가 부패되면서 열이 발생해 땅속에서 소 피와 기름덩어리가 튀어나왔다고 했다. “우사에서 개를 두 마리 키웠어요. 그중 한 마리가 소 살처분하는 걸 봤어요. 그런데 이틀 후 가보니 죽어 있더라고요. 놀라서 죽은 것 같아요. 생지옥이었죠….”

김씨는 지난주 살처분 보상금을 일부 받았다. 생후 7개월 이하는 마리당 150만원(1마리), 그 이상은 250만원(123마리)으로 계산해 모두 3억900만원(124마리)이다. 조만간 살처분한 소의 무게를 따져 시세에 따라 보상금을 다시 정산하게 된다. “기회비용과 시세 차이를 감안하면 보상을 받더라도 결국 손해”라고 말하는 김씨는 “돈이 문제가 아니에요. 소가 죽을 땐 내 몸이 끊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어요”라고 털어놨다.

11일 김씨는 안동보건소를 찾았다. 잠을 이루지 못해 수면제라도 얻기 위해서였다. “죽은 소를 집게 달린 포클레인으로 집을 때 ‘우드득’ 하면서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어요. 그 소리가 지금도 선명히 들려요. 미칠 것 같아요.” 보건소 의사는 정신적으로 굉장히 불안정하니 큰 병원에 가서 진찰받을 것을 권했다. 하지만 김씨는 “지금 병원에 가면 사람들이 나를 정신병자 취급할 것”이라며 병원에 가지 않았다.

김씨는 지금도 오전 6시가 되면 저절로 눈이 떠진다. 그러나 하루 종일 빈 집에서 멍하게 있을 뿐이다. 매일 우사를 찾지만 텅 빈 우사 안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한 채 강아지에게 밥만 주고 돌아선다.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에선가는 살처분하고 있겠죠. 우리 같은 사람들이 원하는 건 다시 소를 키우는 거예요. 억울해서라도 다시 일어설 거예요”라고 말했다. 김씨는 “일이라도 해서 몸을 움직이면 괜찮아질 것 같은데 지옥 같은 구제역이 언제 끝날지 몰라 막막해 짜증만 나고 불안하네요”라고 심경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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