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Focus] 아들을 수학 천재로 키운 어머니 허종숙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6면

수학천재 이수홍군의 성장과정을 담은 『세상 모든 것이 공부다』를 펴낸 허종숙씨. 배경은 수홍군이 초등학생 때 그린 미로.

“내 아이가 타고난 천재라고 생각해 본 적 없어요.”

천재가 아니라는 이 아이는 올해 열여덟 살이다. 그런데 서울대 수리과학부 3학년이 된다. 역대 서울대 최연소 입학 기록을 세운 이수홍(18)군이다. 2006년 수학의 노벨상이라 일컬어지는 필즈상(Fields Medal)을 수상한 세계적 수학자 테렌스 타오(Terence Tao·36)와 함께 국제 수학올림피아드 최연소 금상 수상 타이 기록(15세)을 보유하고 있다. 서울대에 입학하던 해인 2009년 초 TV 퀴즈 프로그램 ‘도전 골든벨’에서 최연소로 골든벨을 울리기도 했다. 이런 애를 두고 천재가 아니라니. 아이 공부에 목숨 거는 이 땅의 학부모들이 들으면 속이 뒤집어질 ‘망언’이다.

“그런 말씀 하시면 다들 짜증낼 텐데요.” 기자의 수 차례 경고에도 주장을 굽히지 않는 이 ‘천재 아닌 천재’ 엄마 허종숙(48)씨가 최근 자녀 교육서 『세상 모든 것이 공부다』를 냈다. “읽어보면 내 말 이해하실 거예요.” 기자의 솔직한 감상을 미리 전하자면, 아이는 천재 맞다. 그리고 자녀 교육에 관한 한 엄마의 통찰력도 아이 못지않다.

글=임미진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 이런 아이가 천재 아니라는 게 말이 되나요.

“난 확신을 갖고 하는 얘기인데, 다들 안 받아들이려고 해요. 천재는 별 노력 없이도 다 깨닫는 사람이잖아요. 우리 아이는 그런 아이가 아니에요. 난 친정오빠가 셋이어서 결혼하기 전에 조카 다섯 명 크는 걸 지켜봤어요. 아이들은 다 비슷비슷해요. 누구나 관심 있는 분야가 있어요. 그걸 집어내서 깊이 있게 캐나갈 수 있게 해주면 능력이 개발되는 거고요. 한꺼번에 다 안겨주려고 하면 아이들이 관심 분야를 깊이 있게 캐나가지를 못해요.”

● 안겨주는 것과 스스로 캐나가게 하는 건 어떻게 다른 건가요.

“엄마들은 장난감을 하나 사오면 애들 앞에 놓고 ‘이것 좀 봐, 갖고 놀아봐’ 하면서 흔들잖아요. 그건 안기는 거죠. 이 장난감이 좋겠다 싶으면 엄마가 그냥 갖고 놀아요. 그럼 아이가 멀리서도 엄마 노는 걸 보다가 와서 자기가 그걸 갖고 놀기 시작해요. 수홍이는 미로 그리기나 수학 퍼즐이나 다 그런 식으로 시작했어요. 내가 미로를 그리고 있으면 수홍이가 ‘그거 뭐야’ 하고 물으면서 다가왔지요.”

● 일단 흥미를 느끼는 걸 찾으면 어떻게 하나요.

“실컷 하게끔 내버려둬요. 수홍이는 몇 달이고 종이만 접기도 하고, 몇 달 동안 미로만 그리기도 했어요. 주변 사람들이 질릴 정도로 미로를 그려서는 ‘풀어보라’고 들이댔어요. 나중엔 A4 용지에 빽빽하게 복잡한 미로를 그렸죠. 요즘 아이들은 이런 경험을 못해요. 몇 시간 단위로 해야 할 공부가 정해져 있으니까, 종이 접기나 수학 퍼즐 같은 걸 끝까지 파고들지를 못해요.”

● 수홍이는 학습지나 학원 공부를 안 했나요.

이수홍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진 전혀 안 했어요. 글자는 네 살 무렵에 저절로 깨쳤지만, 글씨 쓰기 연습도 안 시켰어요. 영어는 초등학교 3학년 때쯤 학교에서 배우기 시작했고요. 조기교육은 반대해요. 뭐든지 배우기 좋은 때가 있어요. 영어는 열 살쯤 되면 쉽게 배울 수 있는데 다섯 살 때부터 시키느라고 아이를 힘들게 하죠.”

●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공부에 뒤처질까 봐 불안하진 않으셨어요.

“난 학습지 같은 걸 공부라고 보질 않아요. 그런 건 따라 하는 거죠. 공부는 사물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과정이죠. 이해하는 능력만 있으면 그 다음부턴 책만 봐도 지식을 쌓을 수 있잖아요.”

책에 소개된 수홍이의 일기를 보면 수홍이는 학습지를 푸는 대신 종이 접기와 팽이, 미로와 마방진(가로와 세로, 대각선 숫자의 합이 모두 같은 정사각형 숫자 틀) 그리기 같은 놀이를 하며 자랐다. 아이의 관심에 맞춰 수학 퍼즐 책이나 종이 접기 교본 같은 것을 ‘던져’준 것이 엄마의 역할이었다. 아이가 자라면서 놀이는 점점 복잡해졌다. 큰 달력 뒤에 1부터 1000까지 수를 써서 소수만 찾아보는가 하면 마방진의 원리를 익힌 뒤엔 40X40 마방진을 그리기도 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일이다.

● 수홍이는 종이 비행기를 날리면서도 어떻게 하면 멀리 날릴 수 있을지 다양한 실험을 했다죠. 하지만 모든 아이가 수홍이 같은 호기심과 집중력을 보일 순 없을 텐데요.

“아이들이 정말 좋아하는 걸 찾으면 그것만 하려고 들죠. 특히 놀거리가 다양하지 않은 아이라면 더 그렇겠죠. 수홍이는 장난감이 그리 많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종이 접기, 팽이 같은 데 엄청 빠져들었죠. 그런 면에서 전 약간 애들을 부족하게 키우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 그런 놀이가 공부 능력과 연결될 수 있을까요.

“공부 능력이라는 게 굉장히 원초적인 거예요. 노력을 통해 성취감을 느끼는 거죠. 종이 비행기가 잘 안 나니까 잘 날릴 수 있게끔 노력하고, 붙들고 있고, 그러다가 잘 날게 되면 성취감을 느끼고. 이 모든 과정이 공부 과정과 완전히 같아요. 안 돼서 짜증이 나고, 그러다 되면 너무 재미있고. 이걸 겪은 아이들은 공부도 쉽게 받아들이죠.”

● 우리 아이는 아예 아무런 것에도 관심을 안 보인다고 걱정하는 부모도 많던데요.

“그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해요. 부모님들이 동기 유발시킨다고 계속 아이들에게 이 교재 갖다 주고 이 장난감 사주고 그러잖아요. 일단 아무것도 안 사주고 기다리면 될 텐데 싶어요. 아이들은 심심해야 재미있는 걸 찾죠. 뭐든 부족해야 원하게 돼있거든요. 그런데 이것저것 들이대면서 ‘해 봐’ 하니까 흥미를 잃죠.”

● 그래도 수홍이의 초등학교 일기를 보면 ‘역시 타고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팽이를 돌리면서 팽이가 도는 원리까지 혼자 궁리해서 썼다든가요.

“다른 아이들은 그만큼 팽이를 열심히 돌려본 적이 있는가를 생각해 보는 게 먼저인 것 같아요. 팽이 돌리기 좀 하다가 학원 가고, 좀 하다가 학습지 하고 하는 거 아닌가요. 팽이를 몇 달씩 돌려보면 팽이가 어떻게 돌릴 때 잘 돌고, 어떨 땐 안 도는지를 누구나 터득하게 돼요. 그 과정을 기록한 거고요.”

● 학원은 왜 안 보내셨나요.

“전 체계화된 교육은 크게 신뢰하지 않습니다. 프로그램화된 공부가 학습 능력을 저해한다고 봐요. 1학년 때는 한 자리 수 덧셈을 가르치고, 2학년 되면 두 자리 수, 삼학년 땐 세 자리 수 덧셈을 가르치죠. 그럴 필요가 있나요. 더하기 개념을 알면 한 자리를 더하는 아이가 네 자리라고 못 더할까요. 그걸 몇 년에 걸쳐 반복하는 식으로 가두면 아이가 그걸 뛰어넘을 수가 없어요.”

● 그럼 공교육도 신뢰하지 않는다는 말씀이신가요.

“절대 아니에요. 공교육은 학습만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니잖아요. 또래 집단이 선생님과 공감하고, 함께 지내는 것을 배우는 거죠. 제 말씀은 그걸 뛰어넘는 교육은 밖에서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학원에서 예습·복습을 하라는 게 아니에요.”

수홍이가 본격적으로 ‘천재’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선생님 권유로 큰 준비 없이 영재교육원 시험을 치렀는데 ‘덜컥’ 합격했다. 학원을 다닌 아이들에 비해 문제를 많이 맞히진 못했지만 독창적인 문제 풀이 방식이 선생님들의 눈에 들었다. 길들여지지 않은 재능이 엿보인다는 것이다.

● 학원을 안 다녀봤는데, 영재교육원 공부 따라잡기는 어렵지 않았나요.

“처음엔 걱정을 했어요. 교육 과정의 상당 부분을 이미 배우고 들어온 아이도 많았으니까요. 처음엔 수홍이도 ‘내가 제일 못한다’고 걱정했어요. 그런데 4학년 때 경험 삼아 보낸 경시대회에서 대상을 받아오더니, 그 뒤론 줄곧 대상을 받아오는 거예요.”

● 비결이 뭘까요.

“공부에 대한 열정과 호기심인 것 같아요. 수홍이가 팽이를 돌리려고 얼마나 끈질기게 노력했는지 일기에서 보셨지요. 그런 마음가짐을 기르는 게 먼저지요. 씨름하던 강호동씨가 MC 잘하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운동하면서 배운 인내심, 인간관계 능력, 리더십이 있으면 방송도 잘할 수 있다는 거잖아요.”

● 특목고를 안 보내고 일반고를 보내셨지요. 총 3개 학년을 월반했고요.

“평범한 학교생활을 하면서 얻는 것이 많다고 판단했어요. 중학교 때 지방의 영재학교를 보낼까 생각을 해봤는데, 가정교육도 중요하다는 생각에 접었어요. 월반을 통해 얻은 것도 있지만 잃은 것도 있어요. 또래 아이들과 편하게 지낼 기회라든가…. 만약 되돌린다면 굳이 학교를 건너뛰게 하지 않을 것 같아요.”

● 수홍이 엄마·아빠가 얼마나 똑똑한 사람인지 궁금해 하는 사람도 많은데요.

“그런 선입견도 엄청 부담스러워요. 아이 아빠나 나나 공부를 못하진 않았지만 천재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에요.”

● 수홍이 성장에 맞춰 공부거리를 찾아주고, 같이 과학 체험전도 많이 다니셨죠. 전업주부여서 가능했던 일 같은데요.

“맞벌이 주부들이 제 얘기를 읽고 그런 부담을 느낄까 걱정도 돼요. 사실 아이는 엄마가 키우는 게 가장 좋긴 하죠. 저도 남의 손에 맡기기 싫어 회사를 그만뒀고요. 맞벌이여도 아이 맡기는 분과 대화가 잘 통하면 가능할 것 같아요. 자기가 생각하는 교육철학을 실천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하죠.”

j 칵테일 >> “태교 전혀 안 했어요”

수홍이 엄마가 젊은 엄마들에게서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태교는 어떻게 했느냐”는 것이다. 수홍 엄마는 “태교를 신경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당시 사무직으로 근무하던 때인데 직장 일이 바빠 건강하게 아이 낳는 것만이 목표였다는 것이다. 아이를 가진 채 해외출장을 다녀오고, 임신 8개월에 남편과 등산을 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지냈다고 한다. 수홍 엄마는 “상식 없는 얘기처럼 들릴 수 있지만, 태교가 아이 지능이나 감수성에 그리 많은 영향은 끼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단골 질문은 ‘태몽’이다. 수홍 엄마는 “꽃이 만개한 산 위에 내가 예쁜 한복을 입고 서 있는 꿈을 꿨다”며 “특별할 게 없어 쑥스럽다”고 웃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