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타오 미국 방문은 ‘석우지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4면

중국이 후진타오(사진) 국가 주석의 미국 국빈방문(18∼21일)을 중화패권주의의 부상에 대한 미국의 의심을 풀 기회로 활용할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려는 야심이 중국엔 없으며, 평화발전의 길을 묵묵히 가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특히 후 주석이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미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시카고를 방문하는 것은 유화적 행보의 절정을 이룰 전망이다.

시카고는 오바마가 청소년 이후 공부하고 성장해 결혼하고 정치적 꿈을 이룬 곳이다. 후 주석은 시카고의 공자학원(孔子學院)을 찾을 예정이다. 하지만 속내는 미국인의 시선을 끌 수 있는 시카고를 통해 중국식 소프트 파워 외교를 펼쳐보이려는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의 경제지인 21세기경제보도는 12일 중국의 이 같은 의중을 ‘석우지려(釋憂之旅)’라는 말로 압축해 표현했다. 후 주석의 이번 방미는 미국의 우려, 또는 중국에 대한 의심을 풀어줄 여행이란 의미다. 칭화(淸華)대 미국연구센터 쑨저(孫哲) 주임은 “중국에 대한 미국의 전략은 중국붕괴론, 중국위협론, 미·중공조론 등 세 유파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가운데 워싱턴의 정치인들과 학자들은 최근 중국위협론을 확산시키고 있다는 것이 이 신문의 분석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미국의 의심을 덜어주기 위한 준비를 착착 진행 중이다. 관영 신화통신은 미국을 방문한 양제츠(楊潔篪·양결지) 외교부장의 말을 인용해 “후 주석이 방미 기간에 중국의 평화발전 정책을 체계적으로 설명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양 부장은 “양국이 광범위한 분야에서 협력 문건에 서명할 예정이며, 후 주석과 오바마 대통령이 새로운 시대의 중·미 협력에 대한 청사진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정부는 후 주석의 방미 기간에 중국의 국가 이미지 제고를 위한 홍보 영상물도 처음 공개한다. 국무원 신문판공실 왕중웨이(王仲偉) 부주임은 “미국프로농구(NBA) 스타 야오밍(姚明)을 비롯한 유명 중국인과 일반 국민이 등장하는 홍보 영상물을 타임스퀘어뿐 아니라 미국 방송을 통해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영상물은 30초짜리와 1분짜리 2종류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중국의 이런 노력이 얼마나 성과를 거둘지에 대해서는 회의론도 만만찮다. 미국전통기금회 드렉 시저즈 선임연구원은 “양국이 공동 관심사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더라도 핵심 문제에서 중대한 진전을 보기는 어렵다”고 비관적으로 전망했다.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석우지려(釋憂之旅)=21세기경제보도가 만들어낸 신조어다. 중국 언론들은 원자바오(溫家寶·온가보) 총리의 2007년 4월 일본 방문을 융빙지려(融氷之旅·얼음을 녹이는 여행)로 빗대기도 했다. 그에 앞서 아베 신조(安倍晉三) 당시 일본 총리의 중국 방문을 파빙지려(破氷之旅·얼음을 깨는 여행)로 표현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