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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 하러’ 갑시다, 도끼 들고 칼날 차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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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벽화에 낀 크램폰 [중앙포토]

우리나라는 외국 산악인도 알아주는 빙벽 등반 선진국이다. 일단 여건이 좋다. 설악산만 해도 토왕성빙폭을 포함해 개토왕·대승·소승·갱기·국사대·실폭포 등 세계적인 수준의 빙폭이 즐비하다. 겨울이 오면 등산학교마다 빙벽 스쿨을 여는 것도 외국에서는 흔치 않은 일이다. 덕분에 이제는 일반인도 빙벽 등반에 쉽게 입문할 수 있게 됐다. 얼음 벽에서 노는 사람들의 겨울 이야기를 전한다.

글=김영주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S바디는 잊으시라, 빙벽서는 ‘N바디’ 자세로

지난 9일 오전 9시, 서울 우이동 실내 빙벽장. 코오롱등산학교 빙벽반에 입문한 초보 클라이머 20여 명이 허공에 대고 타격(얼음을 찍는 기술) 훈련을 하고 있다. 손에는 저마다 아이스바일(빙벽용 피켈)이 들려 있다. 맨손으로 빙벽을 오를 수는 없는 노릇. 그래서 코브라 대가리처럼 생긴 날카로운 송곳에 손잡이 부분을 잇댄 아이스바일을 이용한다. 기구를 사용하므로 암벽 등반보다 수월하지만, 힘으로만 하면 금방 펌핑이 온다. 펌빙은 기구를 잡고 매달려 있으면 팔의 혈액이 뭉쳐 근육이 팽창되는 현상. 초보자가 넘어야 할 첫 번째 걸림돌이다. 이기는 방법은 평소 아이스바일을 젓가락 다루듯이 갖고 노는 연습뿐이다. 아침에 아이스바일을 들고 나가 허공에 대고 휘두르며 달리는 빙벽 매니어도 있다.

빙벽화 바닥에는 크램폰이라는 특수한 아이젠을 끼운다. 그래야 킥(얼음벽에 아이젠을 박는 기술)이 되기 때문이다. 보온을 위한 두툼한 옷도 필수다. 당연히 몸놀림이 둔해지고 균형 잡기가 어렵다. 그래서 얼음 벽을 타기 전, 평지에서 걷는 연습부터 먼저 한다. “피에 마르슈”. 프랑스어로 ‘행진하듯이 걷다’라는 뜻으로 양발이 ‘11자’가 되도록 나란히 걷는 훈련이다.

“붙었다!” 아이젠이 박힌 두 발과 양손에 잡은 아이스바일로 얼음 벽에 착 달라붙었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 순간만큼은 스파이더맨 부럽지 않다. 이제부터 어떻게 기어오를까. 모든 스포츠가 그렇듯 빙벽 등반도 자세가 중요하다. ‘N바디’ 자세는 빙벽 등반의 교과서로 통한다. 피켈을 서로 엇갈려 찍는 것, 그리고 한 발로 서서 몸을 유지하는 게 기본이다. 엇갈린 타격은 체력 소모를 줄이고 속도를 높여준다. 한 발로 선 동작은 두 발을 다 붙이고 있을 때보다 타격이 쉽다.

꿈의 토왕성 빙폭 가려면 기초부터 차근차근

강원 원주 판대아이스파크에서 한 동호인이 빙벽을 오르고 있다. 아이스몬스터와 같은 거대한 얼음을 기어오르는 빙벽 등반은 겨울 최고의 익스트림 레저다.

설악산 토왕성 빙폭은 국내 빙벽 등반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산은 거기에 있는 것만으로도 인간에게 도전을 부추기는 법. 총길이 320m의 거대한 빙폭은 산을 타는 이들 모두에게 동경의 대상이었다. 1977년 박영배(64)씨 등 크로니산악회 소속 4명이 초등했다. 그때만 해도 얼음을 깎아 테라스를 만드는 방식으로 무려 12일간 올랐다고 한다. 지금은 한나절 만에 달음질하듯 오르는 사람도 많다.

상·중·하 3단으로 이뤄진 토왕성 빙폭은 아래서 보면 승천하는 용, 멀리서 보면 하늘에 걸린 비단처럼 보인다. 토왕성 빙폭을 찾아가는 길 자체도 익스트림 산행이다. 비룡폭포 직전 왼쪽 언덕 너머가 토왕골. 여기서 1시간 정도 올라가야 협곡이 나타난다. 협곡에 들어서기 직전 오른쪽 빙폭 방향으로 다시 올라야 토왕성 빙폭이다. 설악동 주차장에서 산행으로 2시간 거리다.

인공 빙벽 중에서는 강원도 인제 매바위와 경북 청송의 얼음골 빙벽이 손꼽힌다. 미시령과 진부령이 만나는 용대리 삼거리에 자리한 매바위 빙폭은 밤이 되면 화려한 조명까지 들어온다. 반면 청송의 얼음골 빙벽은 국내 최대 규모다. 빙질이 다양하고 오버행(차양 모양으로 돌출된 곳)이 많아 등반 루트가 많다. 빙벽장 옆으로는 얼음 썰매장도 있다.

국내 빙벽 스쿨은 1월에 집중돼 있다. 수도권에서는 한국등산학교를 포함해 10여 군데가 있으며, 지역에서도 등산학교별로 빙벽반을 연다. 축제 형식의 빙벽 대회도 여럿이다. 노스페이스 아이스 클라이밍 월드컵(1월 15~16일·원주 판대아이스파크), 2011 아이스 클라이밍 선수권대회(1월 29~30일·청송 얼음골), 설악산 아이스 클라이밍 페스티벌(2월 12~13일·설악산 토왕성폭포)이 예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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