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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펌에 낸 이력서 30장 … 연수원 수료 일주일 전에야 첫 면접, 마이너스 카드 생활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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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사법연수원생 미취업률이 처음으로 40%를 넘겼던 2009년 연수원을 수료한 뒤 ‘변호사 취업난’을 이겨낸 3년차 변호사 김효준(36)씨가 서울 서초동 법원종합청사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김형수 기자]

12일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2011년도 수료생 중 43.9%가 아직 취업을 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취업’으로 고민했었던 3년차 변호사 김효준(36)씨의 목소리를 빌려 ‘변호사 취업난’의 현실을 생생하게 전한다.

 내가 연수원을 수료하던 2009년 처음으로 연수원생 미취업률이 40%를 넘었다. 큰 뉴스였다. 사법시험에 합격한 ‘엄친아’들이 취업난을 겪는 것에 대해 고소해하는 분위기마저 느껴졌다. 나도 취업을 못 했다. 수료식에도 가지 않았다.

 사실 수료 몇 달 전부터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로펌 면접을 봤다는 사람조차 많지 않았다. 나도 30군데 넘게 이력서를 보냈는데 수료 1주일 전에야 첫 면접을 봤다. 서울 외곽에 있는 5명 규모 로펌. 서초동 법조타운의 20~30명 규모 로펌에 가고 싶었었는데…. 며칠을 망설이다가 “가겠다”고 연락하니 “이미 다른 사람을 뽑았다”고 했다.

 수료 한 달이 지나자 초조함이 심해졌다. 100만원 남짓한 연수원 월급도 못 받게 됐지만 주변에서는 으레 ‘고시 붙은’ 우리가 술과 밥을 사길 원했다. ‘취업 못 했으니 못 내겠다’고 말하는 건 더 비참했다. 다들 마이너스 카드로 생활했다. 의정부까지 동기들과 함께 로펌 면접을 보러 갔다. 그런데 스무 명 넘는 지원자를 한방에 모아놓고 대표 변호사가 “구성원이 돼 로펌 빚을 함께 안아야 한다”는 게 아닌가. 벌떡 일어나서 나왔다. 그런데 아무도 따라나서질 않았다. 서른두 살 여자 동기가 말했다. “오빠는 면접 본 적이 있으니까…. 나는 면접이라도 한번 보고 싶어요.”

 나는 3월에야 영등포에 있는 산재 전문 변호사 사무실에 취업이 됐다. 그 뒤로도 어려움이 이어졌지만 희망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눈높이를 낮춰 취업하고 나서 경력직으로 옮길 때는 고용시장이 넓어진다. 지난해 3월 검찰 출신 변호사 사무실로 옮겨 형사 사건 경험을 쌓은 다음 같은 해 7월 서초동에서 개업을 했다.

 3년째 수료생 미취업률 40%대. 취업난은 갈수록 심각해질 것이다. 변호사 수도 늘어나고 위험 부담이 큰 개업을 꺼리기 때문이다. 2~3년차 변호사들까지 개업을 기피하다 보니 신규 취업시장은 자꾸 좁아진다. 내년에는 로스쿨생 등 2500명이 쏟아져 나온다.

 그래도 살길은 있다. 나는 사무실 임대 비용과 직원 월급은 국선 변호료나 각종 상담료로 해결한다. 국선 변호인을 하면 형사 사건 경험을 쌓으면서 보람도 느끼고 돈도 받을 수 있어 1석3조다. 내 경우 의뢰인이 다시 사건을 맡긴 경우가 60%다. 프로게이머 마재윤 선수 사건도 다른 의뢰인이 소개해 준 것이다. 비결은 ‘찾아가는 서비스’다. 주말에도 상담해 주고 휴대전화 번호도 알려준다. 사건을 놓치지 않기 위해 지방까지 찾아가 직접 의뢰인을 만나고 온다. 예전처럼 사시 합격만으로 모든 것이 주어지지 않는다. 경쟁을 이겨내면 로스쿨 시대에도 살아남을 수 있다. 나는 얼마 전 24평 아파트의 대출금을 다 갚았다.

글=구희령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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