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북, 미사일·핵실험 유예로 대화 돌파구 열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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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게이츠(Robert Gates) 미국 국방장관이 그제 베이징에서 주목되는 발언을 했다. 후진타오(胡錦濤·호금도) 중국 국가주석과 면담이 끝난 뒤 한 기자회견에서 “북한은 5년 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이용해 알래스카나 미 서부 해안을 타격할 수 있는 제한적 능력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는 “북한이 핵탄두를 운반할 수 있는 ICBM을 최소한 몇 기 정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는 미국에 대한 직접적 위협이 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게이츠 장관의 발언은 두 가지 점에서 눈길을 끈다. 우선 미 국방장관이 북한의 ICBM이 미국에 대한 직접적 위협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힌 점이다. 그동안 미국은 미사일방어(MD) 체제 구축을 추진하는 배경으로 북한과 이란의 잠재적 탄도미사일 능력을 언급해 왔지만 이번처럼 명시적으로 미국에 대한 위협이라고 규정한 것은 처음이다. 5년이란 시한도 충격적이다. 미 국방부는 지난해 2월 발표한 ‘탄도미사일방어계획 검토보고서’에서 향후 10년 내 북한이 핵탄두를 장착한 ICBM을 개발할 능력이 있는 것으로 평가했었다.

 북한은 1998년 중거리 미사일인 대포동 1호를 시험발사한 것을 시작으로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개발에 공을 들여왔다. 함경북도 화대군 무수단리 미사일 기지에서 1만~1만2000㎞에 이르는 미국 본토에 도달할 수 있는 ICBM급인 대포동 2호를 2006년과 2009년 시험발사하고, 같은 해 핵실험도 실시했다. 미사일 시험발사와 핵실험이 성공적이진 않았지만 시간의 문제일 뿐 결국은 성공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게이츠 장관의 말대로라면 핵탄두 경량화와 ICBM 제조 기술에서 최근 북한이 특기할 만한 진전을 이룩했다고 봐야 한다. 북한 핵과 미사일에 대한 미국의 관점이 대량살상무기(WMD) 확산 방지에서 미국에 대한 위협 제거로 바뀔 수 있다는 점에서 그의 발언이 주목되는 것이다.

 게이츠 장관이 베이징에서 북한의 ICBM 위협을 거론한 것은 중국에 대한 압박의 의미도 있다고 본다. 그의 방중(訪中)에 맞춰 중국은 최첨단 전략무기인 스텔스기를 시험운항하고, 우주무인기 개발 사실을 흘리는 등 사실상의 대미(對美) 무력시위를 했다. 게이츠 장관의 발언은 지금은 미·중이 무기 개발 경쟁을 할 때가 아니라 국제질서에 대한 중대한 위협 요인으로 등장한 북한을 억제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는 메시지로도 읽힌다.

 게이츠 장관은 대화를 위해서는 북한의 ‘진정성 있는 행동’이 선행돼야 한다며, 그 행동으로 미사일과 핵실험의 모라토리엄(유예)을 요구했다. 미국과의 대화를 통해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미국에 직접적 위협이 되고 있는 ICBM 시험발사와 핵실험부터 중단하라는 것이다. 그냥 흘려 들을 얘기가 아니다. 북·미 대화나 6자회담이 진행되는 동안은 미사일과 핵실험을 하지 않겠다고 북한이 선언한다면 북한이 그토록 원하는 대화와 협상의 돌파구가 열릴 수 있다고 본다. 꽉 막힌 한반도 정세를 푸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무엇이 현명한 선택인지 북한은 숙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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