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축구] 김호 삼성감독, '최고의 지략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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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컵대회까지 탐내서야 되겠습니까. 그러나 선수들이 욕심을 낼 것 같습니다" 프로축구 '99바이코리아컵 K-리그 챔피언 결정전에서 우승, 2년연속 우승과 함께 시즌 4관왕 타이틀을 획득한 김호(55) 수원 삼성감독은 다소 여유가 생긴 듯 했다.

4-5년전까지만해도 '만년 야당' '영원한 비주류'로 축구판의 외톨이에 지나지 않았던 김호 감독. 그러나 그는 지금 국내 최고의 감독이 됐다.

통영고 1년을 마친 뒤 동래고로 전학한 그는 고교졸업과 동시에 은사의 권유로 63년 제일모직에 입단한 것이 수원 삼성과의 첫 인연이었다.

군 제대뒤에도 팀에 복귀해 현역선수로 거의 5년을 뛰었으니 95년 12월 창단감독으로 삼성 유니폼을 입기 전부터 이미 질긴 인연의 끈이 놓여 있었다.

78년이후 동래고, 실업축구 한일은행(83-87년)과 프로 현대(88-90년)감독을 거친 김호는 국가대표 전임감독으로 '94미국월드컵축구에 출전하면서 지도자로서 새롭게 평가받았다.

본선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볼리비아,독일,스페인 등과 같은 조에 편성, '죽음의 계곡'에서도 2무1패로 사상 최고의 성적을 거둔 것이다.

특히 1-2로 지고있던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서정원을 교체투입, 동점골을 뽑아내는 등 선수교체 타이밍을 정확히 맞추는 감각을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천부적인 승부수는 최근 '99바이코리아컵 K-리그 챔피언결정전 1차전에서 박건하의 결승골이 그랬고 2차전 역시 0-1로 끌려가자 부상중인 '러시아용병' 데니스를 투입, 상대 수비수의 자책골로 둔갑시킨 것도 같은 맥락.

김정남(전 축구협회 전무이사), 이회택(전남 드래곤즈) 감독과 함께 60년대 중반부터 70년대초 국가대표로 활약한 그는 자신이 수비수였음에도 일찍부터 공격축구를 강조, 한때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유난히 '투쟁력'-그는 투지를 그렇게 표현한다-을 강조, 3-6-1 포메이션을 도입한 김호감독의 공격패턴은 이제 국내 프로리그의 보편적인 경향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유난히 학연이 지배하고있는 국내 축구계의 환경 탓에 늘 겉돌았던 그는 이제는 많이 변해 있다.

자신에 대한 시선도 곱지 않았고 옳 지않은 것을 두고 쏘아대던 독설때문에 '영원한 비주류'로 찍혔으며 30여년동안 고졸이라는 멍에에서 벗어나 오히려 국내 최고의 승부사로 새로운 천년을 준비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지난 98년 오는 2001년까지 계약금 1천500만원, 연봉 1억2천만원에 삼성과 재계약한 김호 감독은 그러나 "구단의 적극적인 지원이나 팬들의 성원이 없었으면 모든 것은 불가능했다"며 공을 돌리고 있다. [서울=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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