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봉 만난 경찰간부 자진신고 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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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조현오 청장

“알 낳는 오리가 있다면 격려해줘야 한다. 빨리 낳으라고 하면 오리가 스트레스를 받아서 알을 잘 못 낳는다.”

 건설현장 식당(속칭 ‘함바집’) 운영권을 둘러싼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 동부지검의 김강욱 차장검사는 10일 기자 간담회를 하고 이렇게 말했다. 이날 강희락 전 경찰청장의 소환을 시작으로 식당 운영업자 유상봉(65·구속기소)씨가 금품 로비를 벌였다고 진술한 이들에 대한 본격 조사 단계로 진입하고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검찰은 로비 대상자들에 대한 사법처리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배경에는 유씨의 ‘탄탄한 진술’이 있다. 수사 초기만 해도 유씨는 수사에 비협조적이었다. 유씨는 조금만 조사를 받아도 피곤하다며 입을 열지 않기 일쑤였다고 한다. 진술을 수시로 바꾸기도 했다. 그러나 검찰이 계좌 추적 등을 통해 상당 부분 물증을 확보하면서 유씨가 일관된 진술을 하고 있다는 게 검찰 안팎의 전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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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히 유씨는 자신이 관리하는 인사들의 리스트를 컴퓨터 파일로 저장하고 수시로 업데이트해왔다고 지인들이 입을 모으고 있다. 유씨의 리스트에는 이름과 고향, 출신학교뿐 아니라 어떤 사람과 친한지 등의 구체적인 인맥 정보가 담겨 있다고 한다. 이런 유씨가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면서 검찰 수사가 탄력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조사 대상이 적지 않은데다 유씨 진술을 구체적인 물증으로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수사가 순조롭지만은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검찰은 유씨의 진술을 토대로 30여 명을 수사선상에 올려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강 전 청장에 이어 이길범 전 해양경찰청장 등을 불러 수사한 뒤 최영 강원랜드 사장과 배건기 청와대 내부감찰팀장 등 정·관계 인사들을 차례로 불러 조사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최근 수사팀인 형사6부에 부부장급 검사 한 명과 평검사 한 명을 추가로 배치했다.

 한편 조현오 경찰청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전국의 총경 이상 지휘관에게 양심고백 차원에서 유씨를 알고 있다면 어떻게 만났는지와 금품이나 향응을 받은 적이 있는지 여부를 적어 내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자진신고를 하지 않고 검찰 수사 과정에서 이름이 거론되거나 언론 취재에 의해 연루 사실이 밝혀지면 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최대한 가혹하고 엄정하게 처벌하겠다”고 덧붙였다.

  정선언·심새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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