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세금 내기 싫다” 국채 팔자 … 회사채 금리 한달새 0.39%P 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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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회사채 금리가 오르고 있다. 정부의 환율 방어 정책과 남유럽 재정위기, 물가 상승 압력 등이 복합적으로 빚어낸 결과다. 이로 인해 당장 국내 채권 펀드들이 손실을 내고 있다. 또 앞으로 회사채를 발행할 기업들의 이자 부담도 늘게 됐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7일 AA- 신용등급의 3년 무보증 회사채 금리는 4.39%로 올 들어 일주일 새 0.12%포인트 상승했다. 한 달 전보다는 0.39%포인트 오른 수치다. BBB- 3년 무보증 회사채 금리도 7일 10.41%로 올 들어 일주일 만에 0.15%포인트 상승했다.

 회사채 금리가 오르는 것은 최근 들어 외국인들이 한국 채권을 팔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은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한국 국채와 통화안정증권을 월 평균 6조원가량 순매수했다. 그러다 12월에 갑자기 3조원 순매도로 바뀌었다.

외국인이 팔아치운 국채·통안증권은 국내 기관들이 사들였다. 자연스레 회사채 매입은 줄였다. 기관의 회사채 순매입액은 지난해 11월 4조2500억원에서 지난달 1조6600억원으로 한 달 새 60% 감소했다. 수요가 줄자 어떻게든 회사채를 팔려는 측이 “금리를 더 얹어주겠다”고 나섰다. 외국인들은 국내 회사채에는 거의 투자를 하지 않고 있다.

 외국인들이 지난해 말 한국 채권을 팔고, 이 결과로 회사채 금리가 올라간 근본 요인은 세 가지다. 우선은 정부의 환율 방어책이다. 지난해 11월 정부는 외국인들의 국채·통안증권 투자에 대한 이자소득세 원천징수제를 부활했다.

2009년 5월에 폐지했던 것을 되살렸다. 외국인들이 달러를 들고 와 한국 채권을 대거 사들인 때문에 원화 가치가 가파르게 오르는 것이라고 보고, 방호벽을 친 것이다. 그러자 “세금을 떼면 한국 채권에서 별로 남는 게 없다”고 생각한 외국인 투자가들이 이탈했다.

 외국인 중에서도 유럽 국가들이 한국 채권을 많이 팔아치웠다. 지난해 12월 한 달 동안에만 영국이 1조2800억원, 독일이 4800억원어치 한국 채권을 순매도했다. 유럽 재정위기 재발설이 고개를 들자 미리 실탄(현금)을 확보해두기 위한 차원으로 풀이된다.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1분기 중 기준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전망도 회사채 금리 인상에 한몫하고 있다. 시장 참여자들의 예상에 따라 주식·채권 등의 가격이 미리 움직이는, 이른바 ‘시장의 선반영’ 효과다.

 회사채 금리가 오르면서 국채 채권 펀드들의 수익률은 악화됐다. 평드평가 업체 제로인에 따르면 국내 채권형 펀드는 최근 일주일간 평균 0.22% 손실을 냈다. 금리가 오르면 채권값이 떨어져 여기에 투자한 펀드의 수익률이 나빠진다. 기업들 입장에서도 앞으로 회사채를 발행할 때 이자를 더 많이 줘야 하는 상황이 됐다.

 증권사 등 채권 투자 관련 업계에서는 회사채 금리가 당분간 상승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제 원자재 가격 오름세에 따른 물가 압력 등 금리를 끌어올릴 요인들이 좀체 누그러질 기세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우증권 김일구 연구원은 “미국을 중심으로 채권에서 주식으로 투자 자금이 옮겨가는 ‘머니 무브’가 나타나고 있다”며 “채권 수급으로 봐도 금리 상승 신호가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채권 투자 수요가 줄면 채권 가격은 떨어지고 금리는 오르게 된다.

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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