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L당 1900원 육박하는 휘발유값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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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경기도 양평에서 인테리어 점포를 운영하는 신현수(39)씨는 요즘 출장 가는 것이 두렵다. 승용차와 사업용 트럭을 1대씩 보유하고 있는 신씨는 “평소 한 달 기름 값으로 130만원가량을 쓴다”며 “최근 기름 값이 다락같이 오르면서 기름값이 20만~30만원 정도 더 늘었다”고 말했다. 그는 “가뜩이나 사업이 어려운데 기름값으로 하루에 몇 만원씩을 도로에 뿌린다고 생각하니 먼 길 출장은 내키지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기름값이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9일 한국석유공사 석유정보센터에 따르면 1월 첫째주(2~8일) 보통 휘발유의 전국 주유소 평균 판매가격은 전주보다 L당 12.5원 오른 1817.3원을 기록했다. 2008년 8월 첫째주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L당 1900원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고급휘발유는 L당 2008.3원으로 벌써 2000원대에 진입했다. 자동차용 경유도 이달 첫째주 L당 1613.9원으로 전주보다 11.90원 올랐다. 2008년 10월 셋째주(1622.1원) 이래 최고치다. 난방용 실내등유도 11.23원 뛴 1184.6원에 팔렸다. 2008년 11월 첫째주(1185.3원) 이래 가장 높다.

 전국적으로는 서울이 L당 1885.3원으로 가장 비쌌고, 제주(1883.3원)·인천(1830원)순으로 나타났다. 전북(1793원)이 가장 낮았다.

 상표별로는 SK에너지가 L당 1826.2원으로 가장 높고, GS칼텍스(1826원)·에쓰오일(1808.8원)·현대오일뱅크(1807.1원)·농협(1783.3원)·자가상표(1780.6원) 순이다.

 기름값이 빠르게 오르면서 가격을 낮추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소비자시민모임 석유시장감시단은 이달 초 “세금을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휘발유에 붙는 세금에 탄력세율(11%)을 조정하면 소비자 부담을 L당 200원 정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휘발유의 경우 51%가 세금(교통세·교육세·주행세 등)이다. 감시단은 또 “12월 국내 휘발유 가격 인상폭이 국제휘발유값 인상폭보다 더 크다”며 “정유사도 가격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12월 국제휘발유 가격은 배럴당 91.32달러에서 99.18달러로 한 달간 8달러 올랐다. 환율을 감안하면 L당 65.7원 인상된 것인데 휘발유 공장도가격은 77.1원 올랐다는 것이다.

 SK에너지 측은 “국내 기름값 인상폭이 국제가보다 낮은 기간도 있는데 특정한 시점만 놓고 비교해서는 안 된다”며 “세금이 정해져 있고 원유와 국제 가격이 오름세여서 가격을 낮출 여지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GS칼텍스 측은 “휘발유 1L를 팔아 얻는 수익이 10원이 채 안 된다”며“가격인하를 위해 셀프주유소를 늘리고 생수제공 같은 서비스를 줄이는 방법을 검토할 수 있지만 그마저도 쉬운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기름값 상승은 ▶양적 완화 정책을 펴고 있는 미국의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 확산 ▶유럽 및 미국 동부 지역 한파로 인한 난방유 수요 급증 ▶투기적 수요 확대 등이 주요 배경으로 꼽힌다. 우리투자증권 김재중 연구위원은 “석유수출국기구(OPEC) 등 산유국의 생산량이 큰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투기자금까지 가세하고 수요가 늘고 있어 국제유가는 당분간 상승세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에너지경제연구원 이달석 선임연구위원은 “다만 구미 한파가 잦아들고 중국의 금리 인상, 유럽 재정위기 같은 변수가 있어 조만간 소폭 하락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염태정·이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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